Abstract
이 글은 세운지구(6-3-1, 2구역)에 대한 발굴조사를 통해 출토된 왜사기와 그 쓰임에 대한 역사적, 생산 및 소비의 추이를 추적하고 그 내용을 이해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를 통해 왜사기는 언제부터 출토되었으며 종류가 무엇이고, 어떠한 물품들이 당대인들에게 쓰여졌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특히 왜사기는 상품으로써 사람들에게 소비되었기 때문에 확인되는 출토품의 상표를 분류하고 분석하여 이것들이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져 세운지구 거주 사람들에게 수용되었는지를 검토하였다.<BR> 청계천 남안의 세운상가 일대는 조선 개항이후 근대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일본인들이 집단적으로 거주하였던 곳이었다. 본 논문에서는 세운지구(6-3-1, 2구역)에 대한 발굴조사 과정에 Ⅰ문화층(1940년 이후)과 Ⅱ문화층(19C 후반-1940년)에서 왜사기가 다수 출토된 점에 주목하였다.<BR> 세운지구의 제Ⅰ문화층에서는 건물지 7기가 발굴되었고, 제Ⅱ문화층에서는 건물지 28기가 조사되었다. 이곳은 漢陽都城의 동남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조선 말기에 이르러 근대화와 현대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지형과 지리에도 많은 변화가 수반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고, 다양한 왜사기가 다수 발굴되었다.<BR> 왜사기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로 편년되는 Ⅰ과 Ⅱ, 두 개 문화층의 건물지들에서 모두 410점이 출토되었다. 이들 왜사기 가운데 확인 가능한 器種에는 沙鉢, 盞, 盌, 접시, 대접, 종지, 甁, 뚜껑, 盒과 같은 생활 食器類가 대부분이고, 祭器와 壺, 高足杯, 술동이, 注子 등과 같은 祭儀나 酒類 관련 器種 일부 및 향꽂이와 촛대꽂이 같은 瓷器類 등이 출토되었다. 또한 왜사기에는 銘款이나 商標가 다수 확인되는데, 세운지역에서 출토된 왜사기의 명관은 58점에 이르며, 명문은 한자, 상표, 영문, 한글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다.<BR> 세운지구 왜사기의 출토는 구한말부터 일본 측의 對한국 상품 유통의 흔적이 일용품인 자기류에서 나타나고 있으며, 민간에서의 왜사기 유입과 사용과정이 세운지구(6-3-1,2구역)에 고고학적 발굴조사에서 확인되고 있음을 알려준다. 이러한 왜사기의 유입과 사용은 그 시대 우리의 전통 도자의 제작방법과 유통, 소비와 구매 측면도 산업적 차원으로 접어들 수밖에 없음은 물론, 사람들이 왜사기를 소비하면서 형성하게 된 도자 용기에 대한 관념으로 인해 기존 기형, 문양 등의 변화가 우리 도자에도 수반될 가능성을 짐작케 한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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