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본고에서는 1880년대 초 유길준의 해외체험과 열강인식을 살핌으로서 다음을 究明할 수 있었다. 첫째, 그는 박규수 문하에서 개화사상에 눈떴으며, 1872년에 만난 민영익은 일본과 미국 유학의 꿈을 현실로 만들어 준 후원자였다. 둘째, 그는 유학 시 만난 후쿠자와 유키치와 모스를 통해 사회진화론을 수용하였으며, 기독교를 신도로 대체한 일본의 선례를 참용해 유교를 국민・국가 통합의 정신적 기제로 삼는 점진적 국민국가수립론을 모색한 보수적・현실주의적 사상가였다. 셋째, 그는 최악과 차악의 침략자로 러시아와 일본을 지목한 다음 미국은 기대와는 달리 우방으로 신뢰가 가지 않는 못 믿을 나라로 저평가 한 반면 중국은 조선을 지켜줄 가장 든든한 보호자로 규정했다. 넷째, 그가 구상한 중국에 의존하는 중립국화는 중국의 간섭과 통제를 줄이기 위한 고육지책이었으나, 이는 고종의 引俄・拒淸策을 정면으로 부인하는 역설을 범했기 때문에 세상에 공표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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