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본고는 도산이 독립국 국민의 자격을 갖출 수 있는 민족성의 개조를 위해 조직하거나 참여한 대한인국민회, 신민회, 흥사단, 수양동맹회, 수양동우회, 동우회 활동을 통해 정의돈수사상과 실력양성론을 어떻게 실천하고 있는가를 살펴보고, 그것이 춘원의 「민족개조론」과 민족운동에 어떻게 녹아 있는가를 구명하여 춘원이 식민지 근대화론과 거리가 있음을 밝힌 글이다.BR 도산은 1902년부터 동포들의 무정한 삶을 보고 생활개선을 강조하다가 1907년 신민회를 만들면서 민족성 개조까지 언급했다. 흥사단의 약법에도 정신 개조가 중심을 이루고 있다. 그는 독립국 국민의 자격을 갖추기 위해 우리의 경제력과 문화 수준을 향상시키고, 정의를 돈수하여 백성들이 정을 느끼면서 살 수 있는 유정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 정신을 개조시키기 위해 민족계몽운동을 하던 도산은 1919년 5월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총리 대리를 맡으면서 독립할 수 있는 실력을 기르기 위해 독립운동방략을 준비하면서 즉시 연통제를 시행하였다.BR 1922년 5월 춘원이 발표한 「민족개조론」은 우리의 민족성의 본질적인 부분을 잘 살려나가고 부속적인 면을 개조하려는 것으로 도산의 정의돈수사상과 무실역행사상을 바탕으로 민족성의 개조를 주장한 글이다. 춘원은 박은식과 신채호의 뒤를 잇는 신민회의 문학적 적자라는 지적을 받을 정도로 도산의 추종자였으며, 일관되게 흥사단, 수양동맹회, 수양동우회, 동우회 활동을 하면서 도산의 정의돈수사상, 무실역행사상, 실력양성론을 실천하였다. 또한 신문 연재를 통한 민족계몽운동은 연통제가 차단된 상황에서 매체를 통해 우리 민족의 독립 의지를 전파하고 민족계몽을 하는 통로였으며, 모범촌 조성에 대한 관심은 신민회의 민족진흥사업운동의 연장선상에서 경제와 문화의 수준을 제고하여 우리 민족의 해외 유출을 막기 위한 유정한 사회 조성 사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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