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14세기 고려를 습격한 왜구는 1380년을 전후하여 본격적으로 동해안 지역을 약탈하기 시작한다. 이는 고려의 조운이 육로화 혹은 폐지되고, 진포대첩·황산대첩 등의 패배로 인해 왜구들이 새로운 약탈루트를 찾는 과정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된다.BR 동해안의 왜구는 기본적으로 對馬를 출발하여 동해안을 따라 영해부·축산도를 교두보로 삼아 내륙으로 진출하였다. 그들은 산맥을 넘어 충청·강원·경기 등 내륙지역까지 약탈하였는데, 고려시기에 정비된 역로를 따라 이동하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또한 이 시기 왜구가 울릉도를 일시적인 근거지로 삼기도 하였다.BR 동해안 지역에 왜구가 창궐하는 무렵에 가왜가 발생하기도 하였다. 그들은 영해 지역의 화척·양수척으로, 왜구의 일원이 아니라 지역적·신분적으로 경계적인 상황에서 독자적으로 생겨난 집단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BR 조선 태조 5년(1396) 왜구들이 동해안을 공격하였다. 그들은 조선군에 의해 진압당할 상황에 처하게 되자 조선에 항복하였다. 그 우두머리의 이름은 羅可溫이었다.BR 羅可溫의 정체는 바로 조선전기 쓰시마 도내의 실력자이자 교역자로 활동한 早田佐衛門太郞였다. 1396년 羅可溫의 왜구 활동을 1380년대 동해안의 왜구와 비교해보면, 동해안의 왜구는 早田佐衛門太郞가 주축이 된 집단으로 보인다. 早田는 그간 왜구의 우두머리로 지목되었으나 직접적인 해적 활동이 잘 드러나지 않았는데, 14세기 후반 동해안의 왜구가 바로 그의 소행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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