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이 글은 고려시대의 경험과 문헌 정보를 바탕으로 신라의 저명한 김유신에 대한 기억과 인식의 문제를 논의한 것이다. 김유신에 대한 기록은 고대 삼국의 구성원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였다. 그러나 김유신에 대한 풍부한 기억과 다양한 설명들은 각기 주체가 다르고 그에 따라 중심 화소도 달라졌다. 또한 전승의 주체뿐 아니라 전승을 수용하는 방식에서도 시대와 처지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주목하였다. 김유신을 기억하고 설명하는 사유 체계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삼산의 호국신, 불교의 33천 관념, 유교의 성인 등을 중심으로 새로운 예화를 거느리면서 변전하였다. 신라 왕실에서도 상대는 물론 중대 무열계 왕통과 하대 원성계 왕통이 서로 다른 이유와 필요에서 김유신을 호명하고 권위를 분유하였다. 지식인과 문맹인의 기억은 각각 경험적 합리와 감동적 신이를 대변하는 것이지만, 때때로 그러한 분별이 무의미할 정도로 서로 정합 관계를 이루고 있었다. 요컨대 김유신에 대한 기억과 인식은, 고대의 신라와 중세의 고려를 막론하고, 신이와 합리의 양단을 모두 포섭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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