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라리보 주교는 한국 천주교회사에서 서울과 대전이라는 두 교구의 책 임자를 맡은 이례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서울의 교구장에서 물러나서 본 당 신부를 하다가, 다시 대전의 교구장이 된 특별한 경력을 가진 선교사이 기도 하였다. 현재 라리보 주교의 사목활동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의미가 부여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에도 참석한 그를 자신이 살고 있 는 시대와 사회 속에서 무엇이 한국 천주교회에 유익한 일인가를 끊임없 이 모색하면서 사목활동을 전개한 매우 진보적인 주교로 파악해야 할 것 이다. 1948년 5월 라리보 주교가 교구장이 되면서 파리외방전교회가 새롭게 담당하는 대전교구가 탄생하였다. 그러나 대전교구가 실질적으로 독립될 때까지에는 매우 복잡한 과정이 뒤따랐다. 그것은 그의 교구장 임명이 서 리였다는 사실에서 살펴볼 수 있다. 이에 그는 1958년까지 대전이 독립적 인 교구로써 제대로 운영될 수 있도록 만들었다. 한편 라리보 주교는 한국에 젊고 진보적인 선교사들이 새롭게 들어오기를 바랐으며, 그들의 사명이 한국인에 의한 한국천주교회가 되도록 하 는데 있음을 주장하였다. 때문에 그는 한국인 성직자의 양성에 많은 노력 을 기울였으며, 1965년에 한국인 성직자에게 교구장을 다시 넘겨줌으로 써 한국천주교회사에서 그가 담당한 역사적 역할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 였다. 이제 이러한 그의 노력과 함께 대전교구가 새로운 시대를 향한 도약 을 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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