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17세기 말-18세기 초에 걸쳐 八公山 중심으로 활동한 義均은 팔공산화파의 대표적 화승이다. 그의 스승은 청도 大悲寺 <영산회상도>(1686)를 제작한 首畵僧 海雄이다. 이 작품은 해웅의 가장 오래된 활동기록이다. 이때 次畵僧으로 참여한 인물이 의균이며, 이로 인해 의균의 스승이 해웅으로 알려졌다. 본고에서 18년이나 더 빠른 해웅 관련 史料를 발견하였다. 이러한 내용을 담은 刊記부분에서 해웅은 고방사 寺內大衆 大德으로 주석하였음이 확인되었다. 또한 고방사 자체 각판한 『眞言集』(1670)에서도 역시 해웅이 大德으로 고방사 本寺 大衆秩에 올려져 있었다. 그리고 당시 해웅이 살았던 고방사와 목판불사를 진행하였던 울산 운흥사는 碧巖門中 승려들이 세거하며 살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高方寺懸板記文Ⅰ』 (1698)과 『雲興寺 木板 資料集』에 보이는 刊記와 後跋 등에서 그 사료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해웅의 門中은 碧巖 系列의 문중이라고 추론할 수 있으며, 의균 또한 스승을 따라 벽암각성의 문중을 배경으로 하였다고 볼 수 밖에 없다. 한편, 道文과 의균의 畵風交涉이 이루어졌으리라는 가능성이 사실로 확인되었다. 그동안 기존의 사료들에서는 추측만 무성하였을 뿐, 확실한 자료근거가 부족 하였다. 팔공산화파의 화풍이 도문의 화풍과 類似性이 발견되어 畵緣關係가 있었을 것이라고만 추정하였다. 그것을 확인시켜주는 작품이 발견되었다. 다름 아닌 義均作 新出 彌陀寺 <地藏十王圖>(1706) 畵記에서 供養施主者로 참여한 도문을 확인하였다. 비슷한 시기에 施主者로 참여한 사실도 확인되어 둘 사이의 화연관계가 사실로 증명되었다. 이러한 교섭을 바탕으로 의균과 도문의 화풍共有가 명확히 밝혀졌다는 점이 본 논문의 큰 수확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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