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루도비쿠스 1세는 광범위한 교회 개혁을 통해 기독교 세계의 갱생과 통합을 도모했으며 자신의 제국을 거대한 교회 공동체로 인식했다. 제국과 교회의 일치 를 중요하게 생각한 그는 817년에 『제국 칙령』을 제정하여 다음 세대에도 제국 의 통일성이 유지될 수 있도록 선제적인 조치를 취했다. 820년대부터 황제의 조력자를 자처하면서 루도비쿠스 1세의 권력을 공유하던 프랑크 주교들 역시 제국의 안정과 통합을 중요하게 생각했는데, 829년 황제가 『제국 칙령』을 파기 하자 이들 중 상당수는 장남 로타리우스 1세를 대안으로 여기고 833년 제2차 반란에 가담했으며 루도비쿠스 1세의 패배를 신의 심판으로 해석했다. 반황제파 성직자들은 루도비쿠스 1세로부터 황제권을 합법적으로 박탈하기 위해 공개 참회를 활용했다. 당시 프랑크 사회에서는 공동체의 결속을 방해하는 일체의 행위를 공공 범죄로 간주하고 공개 참회를 요구했는데, 로타리우스 1세 의 편에 선 주교들은 공공성을 지닌 범죄 목록을 작성하여 루도비쿠스 1세에게 읽도록 강요함으로써 폐위를 정당화했다. 또한 이들은 참회자를 수도사와 동일 시하던 관행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공개 참회를 마친 루도비쿠스 1세를 세속 으로부터 영원히 격리하여 무력한 존재로 만들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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