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신흥무관학교는 1910∼20년대 만주의 대표적인 독립군 간부 양성소였다. 그렇다면, 신흥무관 학교는 어떤 이념과 사상으로 운영되었을까? 또한, 이 학교의 설립에 관여한 것으로 확인되는 김대락·이상룡 등의 유림은 어떤 방식으로 학교에 기여하였을까? 신흥무관학교의 유교적 맥락을 확인함으로써 다양한 사상의 총합물인 신흥무관학교를 다면적으로 이해하는 계기를 제공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본문을 다음과 같이 구성했다. 우선, 1910년대 만주로 건너가 독립운동이나 반일운 동에 참여한 유림을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하고, 신흥무관학교 유림세력이 어떤 유형에 해당하는 지 확인하였다. 이어, 유림과 유교의 신흥무관학교에 대한 기여도를 학교의 설립과 운영, 학생 충 원과 부지 확보, 이념과 생활의 측면에서 살펴보았다. 김대락·이상룡 등은 원래 보수유림이었지만 1905년 제2차 한일협약 체결 전후에 계몽주의를 수 용한 뒤 개신유림으로 전환한 인물들이었다. 이런 배경으로 인해 신흥무관학교의 유림세력은 만 주에서 공교운동을 진행하거나 의병운동 방식을 중시한 보수유림과 대립하는 경우가 많았다. 김 대락은 이상적 공동체의 이념으로 ‘共理’라는 개념을 제안했는데, 그는 기존 유림과 달리 공화라 는 용어에 거부감을 보이지 않았고, 공화주의를 중국‧일본‧러시아 등 동아시아의 시대정신으로 이해하였다. 이는 ‘유교적 공화주의’라고 불릴 만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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