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이 연구에서는 구전 창세신화와 백두산 전설, 각종 민담과 고소설을 대상으로 지하세계의 형상과 의미를 살폈다. 우주론적 세계관과 사회적 함의를 두 축으로 삼은 논의였다. 지하세계의 세계관적 위상과 사회적 함의는 갈래와 작품에 따라 다양한 면모를 나타낸다.BR 창세신화에서 땅은 본래 하늘과 섞여서 한몸이었던 존재로서, 지하계는 천상계와 짝을 이루는 본원적 신성공간으로 인식된다. 땅에서 솟아난 청의동자의 눈이 해와 달이 됐다는 것은 지하계의 신령한 생명성을 잘 보여준다. 이러한 지하의 위력은 천지수와 삼태성 같은 신화적 전설에서 큰 재앙을 낳는 부정적인 대상으로 표현된다. 흑룡과 지옥신은 지하의 검은 위력을 표상하는 신적 존재로서 제치 대상으로 사유된다.BR 지하계의 격하된 위상과 부정적 속성은 지하 대적에 대한 민담과 소설에서 잘 부각된다. 지하계의 부정적 면모는 도적과 요괴 형상으로 함축되며 그것은 기존 질서에 반한 존재로서 퇴치 대상이 된다. 이 작품들 속의 지하계는 ‘지하세력’으로서 사회적 상징성을 지니는바, 지하 범죄집단과의 의미연관이 깊다. 그들의 위력은 지상계의 존재까지 잠식할 정도로 막강한 것으로 표현된다. 다만 소설 작품에서는 영웅적 활약담에 초점을 둠으로써 이러한 사회적 함의가 다소 약화되어 있다.BR 민담이나 소설 속의 지하계는 격하와 부정의 대상만은 아니었다. 지하계를 지상계와 평행관계에 있는 공간으로 사유하거나 지상계를 넘어서는 비상한 생명력을 가진 곳으로 그려낸 작품들이 있다. 지하계에 대한 상대적이고 역동적인 인식은 삼한습유에서 특징적으로 형상화된다. 지하에 해당하는 마계는 본원적 존재성과 위력을 현시하며, 천계에 비견될 법도를 지닌 것으로 사유된다. 음(陰)의 영역으로서 마(魔)의 세계가 신계 및 인간계와 긴장적 조화를 이루어야 할 대상이라는 상대론적 관점은 심중한 의의를 지닌다.BR 본 연구에서 도출한 고전문학의 지하계 인식은 한국의 전통적 세계관에 대한 이해를 확장하는 한편으로 문화콘텐츠 스토리텔링에도 시사점을 전해준다. 본원적 신성공간으로서 지하계 인식, 사회질서를 흔드는 지하세력의 위상, 필연적 공존 대상으로서 마(魔)의 존재성 등은 한국적 뿌리를 지닌 힘 있는 스토리텔링의 좋은 바탕이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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