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조선말 백두산 도인 백봉이 영도하던 비밀결사는 민족 고유 신교의 복원을 위해 우국지사 나인영(나철)과 정훈모를 지목하여 경전류를 비밀리에 전수했다. 1906년부터 1909년 사이에 전래된 대종교 초기 경전을 발굴한 결과, 경전류(대종교신원경, 삼일신고, 신사기, 성경팔리, 대종교신리)ㆍ교사류(단군교포명서, 단군교오대종지서, 역대제철성신록)ㆍ예식서ㆍ서한류로 분류되며, 내용은 단군으로부터 이어진 민족 역사와 문화, 신관, 의례로 일관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첫째, 대종교 초기 경전의 역사의식은 단군조선으로부터 부여ㆍ고구려ㆍ발해로 연결되는 ‘북방사’의 정통을 세우고 청나라까지 4천여 년 간을 민족 역사로 보았다. 나아가 단군 개극 이래 겪은 신교의 ‘7회 비운’을 골자로 하여 고대사에서 근대사까지 역사적 사건을 종교사적 관점에서 정리하였다. 둘째, 대종교 초기 경전의 민족의식은 ‘단군’이 신교의 비조로서 그 감화가 요동ㆍ만주ㆍ몽골, 숙신, 여진, 말갈, 거란, 선비, 청 그리고 일본에까지 영향을 미쳤다고 논증한다. 백봉 교단은 동북아 단군 혈족인 ‘배달족 혈통론’을 근간으로 배달족의 단결을 호소하였다. 셋째, 대종교 초기 경전의 종교의식은 외래종교에 대한 배타성이 강하였다. 단군 시대에 기자의 팔조교 허용 이후 여러 종교가 들어옴으로 인해 분열이 가속화되는 신교의 ‘제2회 비운’을 한국종교사에서 외래 종교의 유입으로 인한 첫 폐해로 인식했고, 삼국시대에는 불교를, 조선조는 유교를 망국의 근본 원인으로 판단했다. 그렇지만 과거 인식과 달리 현세에서는 타종교에 대한 관용의 정신을 보인다. 대종교는 일본의 ‘신도’, 중국의 ‘유교’에 상응하는 중요한 연구대상이다. 대종교 초기 경전은 국학 이론과 한국사상사 정립에 있어서 가장 기초적인 자료다. 다만, 일제강점이라는 박해의 시기와 맞물려 축소, 변형, 폐기, 유실의 과정을 겪은 점이 고찰되었다. 그러므로 대종교 1차 자료 전체를 분석하기 위해서는 발굴된 경전류의 체계적인 정리가 시급히 시행되어야 할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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