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蘇我氏의 출자와 관련하여 그동안 논쟁이 되어온 蘇我滿智는 5세기 후반 왜국으로 건너간 木滿致일 가능성이 크다. 그 후손들은 河內의 石川지역에 거주하면서 蘇我氏와 혼인관계를 맺고 645년 본종가의 멸망 이후에는 소아씨의 명맥과 지위를 계승하게 된다. 이후 7세기 후반 石川臣으로 씨명을 바꾼 후 자기 조상들의 활약상을 넣어 소아씨 계보를 완성시킨다.BR 원래 蘇我氏는 5세기대부터 大和의 葛城氏 세력을 흡수하면서 대두하기 시작했고, 6세기대에 들어와 대왕가의 외척으로서 더욱 세력을 확고히 할 수 있었다. 게다가 東漢氏와 같은 백제계 씨족들을 통해 문화·경제적 기반을 다지면서 大和지역을 개발하고, 그 세력을 점차 河內지역으로 확대해 나갔다.BR 河內지역의 백제계 씨족들은 서로 혼인 또는 동족의식을 가지고 일체감을 형성하고 있었으며, 자신들이 위치한 지리적 이점을 이용하여 왜국내 유력씨족들과 관계를 깊이 맺을 수 있었다. 蘇我氏가 하내 지역으로 진출하는 과정에서는 대화정권의 물자 기록, 운송, 보관 등의 일을 전담하면서 정치·경제적으로도 성장하였다. 한편 소아씨는 백제계 씨족들이 갖고 있는 새로운 제도나 기술뿐만 아니라 불교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자신들의 독보적인 위치를 더욱 확고히 할 수 있었다.BR 蘇我氏와 物部氏가 대립하게 된 계기는 다름 아닌 하내지역의 백제계 씨족의 장악과 그에 따른 경제·문화적 기득권 때문이었다. 초기 하내지역의 대외창구는 물부씨가 통제하고 있었다고 생각되며, 이후 소아씨 세력이 확산되면서 양자의 대립이 본격화되었다. 결과적으로 백제계 씨족들은 점차 대화정권의 체제에 편입되었고, 소아씨는 백제의 선진적인 제도를 기반으로 고대국가의 기틀을 완성해 나갔다. 이렇듯 대화정권은 대화지역에서 그 싹을 틔우지만 고대국가의 완성에 필요한 제반요소는 하내지역의 백제계 씨족들을 통해서 확보할 수 있었다.BR

Talk to us

Join us for a 30 min session where you can share your feedback and ask us any queries you have

Schedule a call

Disclaimer: All third-party content on this website/platform is and will remain the property of their respective owners and is provided on "as is" basis without any warranties, express or implied. Use of third-party content does not indicate any affiliation, sponsorship with or endorsement by them. Any references to third-party content is to identify the corresponding services and shall be considered fair use under The CopyrightLa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