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홍천 물걸리사지에는 현재 1기의 삼층석탑과 4기의 석조대좌, 2기의 석조광배, 2구의 석불좌상이 있다. 물걸리사지 삼층석탑은 보물 제545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2층 기단을 구비한 평면 방향의 일반형 석탑이다. 보물 541·542호로 지정된 석조여래좌상과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은 대좌와 석불로 구성되어 있다. 보물 제533·544호는 각각 석불대좌 및 광배로 구성되어 있다. 물걸리사지에는 9세기 후반 경 석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제542호)이 건립된 이후 9세기 말에 이르러 다시 석조불상 두 구(보물 제541호, 제543호)가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9세기 말에 물걸리사지에 조성된 석조불상과 유사한 불상은 인제 한계사지에도 거의 동시기에 조성되었다. 이는 대좌 하대석의 가릉빈가와 광배가 유사한 점을 통해 알 수 있다. 홍천 물걸리사지에 조성된 석조대좌 2기는 한계사지 석조대좌와 매우 유사하다. 두 사찰의 불상이 동시기에 조성되었으며 그 형태가 유사한 이유는 9세기 말기의 사회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보물 제544호의 조성시기는 9세기 말에 조성된 대좌를 모방하고 있는 점을 들어 고려초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하였다. 보물 제544호가 고려 초 제작된 다른 근거로는 고려초 강원지역에 유행하였던 육각건물지와 금강산 정양사 약사전 불상대좌를 비교하여 근거를 제시 하였다. 보물 제542호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이 앉아 있는 대좌 상대석은 광배가 올라갈 수 없는 크기로 인하여 별도의 불상 대좌 상대석으로 추정하였다. 이를 고려한다면 물걸리사지에는 현재 보호각 안에 봉안된 4기의 대좌 이외에 별도의 대좌 1기가 더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본 연구를 통해 물걸리사지에는 석조비로자나불좌상과 대좌 한 짝이 가장 먼저 조성되었음을 밝혔다. 이후 보물 제541호 대좌와 불상 및 보물 제544호 광배를 한 짝으로 한 석조 불상이 조성되었다. 이와 동시에 비슷한 형태의 보물 제543호 대좌가 조성된 것으로 생각된다. 보물 제543호 대좌 상면에는 보물 제541호 불상과 유사한 석조불좌상이 봉안되었을 것이다. 물걸리사지에는 2개체의 철불편이 출토되었다. 보물 제544호 대좌는 출토된 철불편 중 크기가 작은 철불의 대좌일 가능성이 있다. 보물 제542호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의 대좌는 현재 파악된 불상의 개체수를 고려한다면 출토된 철불편 중 크기가 큰 철불좌상의 대좌 상대석으로 추정 할 수 있다물걸리사지에 9세기 후반부터 고려초까지 다양한 불교조각과 석조미술이 조성된 배경은 교통로와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언급하였다. 물걸리사지는 명주지역의 주요 사찰인 한계사지, 선림원지와 원주지역을 연결시켜주는 징검다리 같은 장소라는 점을 본문에서 언급하였다. 결론적으로 물걸리사지는 통일신라시대뿐만 아니라 고려왕조의 성립 이후에도 교통로의 안전한 확보를 통해 중앙정부의 지방통제를 원활하게 수행 할 수 있게 하였던 중요한 사찰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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