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우현 고유섭은 일제강점기 경성제국대학 최초이며 유일한 미학·미술사 전공생으로서 대학시절 이미 불교미술사의 연구를 결심하였고, 졸업 이후 꾸준히 그 목표를 향해 정진하였다. 그가 학부 졸업 후 쓴 첫 논문이 삼국시대를 대표하는 불상을 주제로 한 「금동미륵반가상의 고찰」이라는점은 매우 의미 깊다. 이후 그는 건축, 회화, 공예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였고, 특히 불교 탑파의 연구에 있어서는 기념비적 성과를 남겼다. 전국에 산재한 탑들을 시대별로 개관하고 시대별 양식과 조형성을 도출하여 史的 맥락에서 논의한 『조선탑파의 연구』는 현재에도 중요한저술이다. 또한 고유섭은 개성 박물관장으로 부임하고 나서도 연구를 위해 꼼꼼한 현장 답사는 물론이고 현전하는 유물이 적은 우리 미술사의 공백을 채우기 위해 오랜 시간 동안 철저하게 고문헌들을탐독하여 이에 근거하여 차근차근 각 분야의 미술사를 복원해나갔다. 그는 외국인들이 쓴 조선미술사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우리 미술사를 연구하기 위한 방법론을 모색하고자 끊임없이 시도하였다. 고유섭의 연구 중 불교회화 분야는 매우 희소하다. 단독으로 불교회화를 주제로 한 글은 조선후기의 선묘불화인 「거조암 불탱」이 유일하다. 그러나 그가 고려시대의 회화 흔적을 논한 글인 「고려 화적에 대하여」에서 종교화를 따로 언급하며 당시로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고 실물도 영세한 고려불화에 대해 중요한 문헌자료들을 소개하며 나름의 개관을 하고자 하였고 이는 역시 지금도 유효하고 귀중한 내용이다. 현전하는 유물들만을 중심으로 서술한 외국인이 쓴 조선미술사와 달리, 고유섭은 문헌 기록들을 통해 고려 불교회화의 미술사적 복원을 시도한 것이다. 물론 당시 그의불교회화를 다룬 글은 일제강점기라는 당시의 시대 상황과 역사관점의 영향이 엿보이기도 한다. 근대 이전에는 불교문화재들이 예배대상으로, 혹은 종교적 장엄을 위한 것으로 제작되고 인식되었지만, 근대기로 들어서면서 새롭게 ‘미술’의 영역으로 재인식되기 시작하면서 박물관·미술관에서 불상 등 불교미술품이 전시되기도 하였고, 감상의 대상이 되거나 수집과 매매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고유섭은 특히 이러한 불교미술 분야에 매진하며 신생 학문의 서구적 방법론에만 매몰되지 않고 조선의 미술사를 위한 방법론을 모색하였고 조선미술의 특징을 도출하려 하였다. 그가우리 옛 문헌 자료들을 철저히 탐독하여 단편적으로만 언급되었던 불교미술품들을 역사적 맥락하에 총체적으로 살펴보고, 복원하고, 한국미술사에 있어서 그 중요성을 부각시킨 점은 큰 의미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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