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668년 나당연합군은 고구려의 평양성을 함락했다. 당시 당군과 신라군 선발대는 안주 일대에서 합류한 후 남하하여 영류산에 주둔했다. 영류산은 일제시기 일본학자가 평양 동북쪽의 20리 지점에 위치한 대성산을 영류산으로 비정한 이후, 별다른 의심없이 학계에 수용되어 왔다. 하지만 대성산은 평양 북쪽에 위치한 영류산과 별개의 산으로 추정된다. 나당연합군은 안주-숙천-순안-평양으로 이어지는 교통로를 이용한 것으로 판단된다. 교통로와 지형을 감안할 때 평양 북쪽에 위치한 봉수산과 부산이 주목된다. 봉수산과 부산은 평양에서 북쪽으로 20~30리 거리에 있으BR며, 봉수산에는 전근대시기 주요 통신수단이었던 봉수대가 위치했고, 부산에는 장수가 도끼로 적을 무찔렀다는 전설이 남아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평양 북쪽 20리에 위치했던 영류산은 봉수산(부산) 일대를 가리키는 것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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