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창녕 관룡사의 약사전에 있는 석조여래좌상(이하 ‘약사전불상’)의 대좌에는 大曆七年(772), 용선대에 자리한 석조여래좌상(이하 ‘용선대불상’)의 대좌에는 開元十(결락)이라는 연호가 중대석에 새겨져 있다. 이 두 대좌 명문은 8세기 신라의 지방 문화를 다루는 중요한 자료로서 다루어져 왔다. 그런데 본고에서는 약사전 대좌의 명문 내용을 면밀하게 검토하여 명문이 18세기에 추각된 것임을 논증하였다.<BR> 주장의 논거는 다음의 네 가지이다. 첫째, 『팔공산동화사사적기』에도 ‘大曆 7年’이 등장 하는데, 학계에서 역사적 사실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둘째, ‘成內’라는 신라 이두를 가져다 썼지만, 신라 이두식 문장은 아니다. 셋째, 신라 석불좌상 가운데 ‘미륵’ 명호가 새겨진 사례가 없고, 8세기 창녕 일대의 문화 속에서 미륵신앙은 설명하기 어렵다. 반면 18세기 관룡사에서 만든 가짜 경전 『상법멸의경』에서는 말법시대의 미륵신앙을 설파하고 있다. 넷째, 관룡사에 오랫동안 주석했던 설송 연초를 비롯한 편양파 불교도들은 불교계의 부흥을 이끌고자 하는 종교적 열정에서 영남 불교 사찰들의 역사를 가공하였는데, 관룡사도 그 가운데 한 곳이다.<BR> 한편 용선대 대좌 명문은 사실 관계를 추적할 만한 내용이 없어서 논증이 어렵지만, 약사전불상과 같은 배경을 지니고 있다고 판단하였다. 그러므로 현재 관룡사에 있는 석불좌상 두 구의 명문에 근거하여 8세기 초중반 신라의 지방 문화를 설명하는 것은 유보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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