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신라하대는 잦은 왕위 찬탈과 교체로 왕실이 무력해지면서 새로운 세력의 대두와 함께 ‘철’이라는 신소재, ‘지권인’이라는 새로운 도상을 가진 불상이 ‘지방’의 ‘선종사찰’에 봉안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후 금석문 등의 연구를 통해 신라 하대 왕실과 지방 선종사찰의 선승이 긴밀한 관계를 맺었으며, 지방 소재 사찰의 상당수 철불·비로자나불상이 신라하대 왕실 후원에 의해 제작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신라하대 대표적 철조비로자나불상인 장흥 보림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은 뒷면의 명문을 통해 제작연대가 밝혀진 우리나라 최초의 기년명 철불이다. 지권인의 수인을 갖추었고, 조상기를 담은 명문이 불상에 양각되어 있기에 보림사 상의 존명이나 제작 시기, 조성 주체 등 별다른 논란의 여지가 없는 듯 보였다. 하지만 보림사 상 명문에는 김수종이 정왕, 즉 헌안왕에게 불상 주조를 청하였고, 왕이 칙서를 내려 허락하였다는 내용이 있어 혼란을 야기한다. 구체적 이름과 함께 불상 주조를 청하는 적극적인 모습의 “金遂宗”과 칙서를 내려 불상 주조를 허락하는 헌안왕은 각각의 이유로 보림사 상의 조성 주체로 보이며, 이는 보림사 상의 조성 주체를 지방세력 또는 신라하대 왕실로 추정하는 근거가 되었기 때문이다.<BR> 이 글에서는 조성주체로 헌안왕을 지목하였다. 보림사 상과 헌안왕의 연계성은 앞서 언급한 보림사 상의 명문 뿐 아니라 〈북탑지〉(870년)와 〈장흥 보림사 보조선 사탑비〉(884년)를 통해서도 확인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불상의 형식 및 양식, 완성도 측면에서 보림사 상이 중앙 장인들에 의해 보편적 양식과 동시대 유행 양식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았다.<BR> 보림사가 위치한 당시 무주지역은 옛 백제의 영토이며, 신라하대 최대 반란인 김헌창의 난(822년) 가담지이자 장보고의 청해진(828년)이 설치된 지역이었다. 장보고 살해(841년)와 청해진 해체(851년) 이후 지역에서 반왕실 정서가 팽배하였으나, 김양이 이를 평정하였다. 본 글에서는 857년 김양의 사망 직후 헌안왕이 체징에게 보림사로 이거를 청한 점에 주목하였다. 즉 헌안왕은 보림사와 체징을 후원함으로써 김양 사후 동요할 수 있는 무주지역 민심을 다독이고 수습하여 정치적 안정을 도모한 것으로 파악하였는데, 이와 같은 왕실과 지방 사찰 선승의 정치적 관계는 다수의 연구에서 발표된 것 같이 당시 일반적인 현상이었다.<BR> 왕실에서는 지역 사찰을 후원하면서 유력 선승과의 친분, 왕실의 건재와 위상을 공포하기에 효과적인 시각적 매체를 선종 사찰에 조성하고자 하였다. 보림사 뿐 아니라 문성왕~헌안왕대 왕실의 후원을 받은 선종 사찰 실상사와 성주사에도 절대 왕권의 표상이라 할 수 있는 장육의 노사나상이 공통적으로 조성되었기 때문이다. 장육의 노사나상이 신라하대 왕실의 후원을 받은 서남지역 선종 사찰에, 9세기 중반 집중 조성된 사실은 이 상들이 왕실의 왕권강화 의도 하에 제작되어 봉안되었음을 시사한다.<BR> 헌안왕의 보림사 상 조성은 기본적으로 지역 유력 선승 후원이나 불상 조성을 통해 왕권 강화를 시도한 신라하대 왕실의 불사와 상통한다. 하지만 헌안왕의 불사는 무주지역을 특정하여 체징의 보림사 이거를 청하고, 장육의 노사나 불상을 조성하고, 경주 진골귀족의 참여를 독려하는 한편 중앙기관 선교성에 예편하는 등 보림사 중창 전반을 기획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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