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이 글에서는 1939~1990년에 걸쳐 이루어진 미륵대불 건립을 계기로 인지하게 된 法住寺 龍華寶殿 寺域의 성격과 그곳에 배치된 석조물들의 정체성을 재검토해 보았다. 특히 용화보전 앞 석조물에 대해, 미술사적 시각과 불교 의례적인 측면을 모두 고려하여 개별적인 정체성을 탐색하는 한편 이들의 집합적이고 의례적인 의미망을 ‘복구’해 보았다.<BR> 지금은 사라진 법주사 용화보전 앞에는 세 점의 석조물이 전각을 향해 일렬로 놓여있었다. 희견보살상과 사천왕석등, 돌로 만든 화려한 연꽃 모양의 석연지가 그것인데, 이들은 오랫동안 용화보전의 미륵장육존상을 장엄해왔다. 그러나 19세기 말, 미륵장육존상이 피탈되고 용화보전이 훼철되면서 이곳에는 석조물만이 덩그러니 남게 되었다. 다행히 1939년 주지 장석상에 의해 용화보전 사역을 재건하기 위한 움직임이 시작되어 1990년 나름의 결실을 맺었지만, 그 과정에서 용화보전의 일부를 이루었던 석조물들은 사역 곳곳으로 흩어져 버렸다. 이들의 이산은 미륵대불 조성의 결과였지만, 이렇게 이산을 용인한 데에는 ‘喜見菩薩’과 ‘石蓮池’로 불리던 석조물의 원자리가 용화보전 앞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과 이들이 집합적인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판단이 결정적인 작용을 하였다.<BR> 이 글에서는 지금까지 개별적으로 인식되어왔던 용화보전과 그 앞의 석조물들이 용화보전에 봉안된 미륵존상을 중심으로 배치된 것이고, 그렇기에 그 정체성은 집합적으로 인지되어야 함을 역설하였다. 이들은 상호 관련 속에서 미륵하생이라는 독특한 내러티브를 만들어낸다. 이 내러티브에서 이른바 ‘희견보살’은 중요한 매개체 역할을 한다. 석가 입멸 후 열반에 들지 않고 세상에 남아있다가 미륵 하생시 석가의 法을 전하는 신표로서 가사와 발우를 전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존에 ‘희견보살’로 불리던 奉鉢石像은 하생하는 미륵을 영접하는 ‘가섭존자’로 볼 수 있겠다. 그간 그 정체성을 둘러싸고 논란이 분분했던 ‘석연지’에 대해서는 『大智度論』에서 묘사한 큰 연꽃 자체로서의 자리, 즉 蓮花 위에 寶欄을 설치하여 臺座를 표현한 ‘빈 蓮花座’로 추정하였다. 더 나아가 이 대좌는 실제 불상을 안치할 목적의 대좌가 아닌 하생할 미륵을 맞이하기 위한 빈 대좌로, 구조적 완결성을 갖춘 조형물이자, 용화보전 미륵과의 관계라는 의미망 속에서 미륵대망이라는 내러티브를 완성한다고 상정하였다.<BR> 이렇게 된다면, 법주사 용화보전의 미륵불과 그 앞의 석조물들은 당대 사람들의 간절한 미륵대망의 표현일 뿐 아니라, 법주사는 실제 하생하는 미륵을 맞이하는 장소라는 성격을 갖게 된다. 이것이 법주사가 초창기부터 간직해왔던 특이성, 즉 미륵의 하생을 기다리고, 바라고, 준비하는 미륵대망의 장소성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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