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본고는 동남아시아-일본-조선-중국을 포괄하는 교역 네트워크를 배경으로 하여, 조선후기 조일 관계에서 동남아시아 산물의 교역 실태를 검토한 것이다. 17세기의 동남아시아 산물 교역 상황을 개관하고, 18・19세기의 교역에서는 수우각 무역의 추이를 중점적으로 검토했다.<BR> 조선시대에 수입되던 대표적인 동남아시아 산물은 수우각, 후추, 소목, 명반이다. 수우각은 공예품과 활의 재료로, 후추는 조미료나 약용으로, 소목과 명반은 각각 붉은 염료의 재료와 매염제로 사용되었다. 쓰시마는 나가사키에 내항하는 중국선과 네덜란드 선박으로부터 동남아시아산 물품을 구입하여 왜관으로 가져갔다. 또한 조선이 수입한 수우각・후추・소목은 17세기 초부터 18세기 초까지 약 1세기 동안 ‘세폐의 명목으로’ 중국으로도 유입되었다(동남아시아→나가사키→쓰시마→조선 왜관→중국 북경을 연결하는 물품의 이동로).<BR> 조선후기 조일무역에서 동남아시아 산물의 무역량이 최고를 기록한 시기는 17세기 말이다. 그러나 일본 국내의 산물이 아닌 만큼 쓰시마가 왜관무역에서 판매할 수 있는 수량은 나가사키 무역의 호황 정도에 따라 증감의 폭이 컸고, 품목에 따라서는 한 해의 교역량이 제로인 경우도 발생했다. 특히 군수물자였던 수우각은 조선에게는 매우 귀중한 수입품이었으나 이미 18세기 전반에 나가사키로 반입되는 양이 매우 불안정했다. 본고는 나가사키키키야쿠(長崎聞役)로 근무했던 마쓰우라 산지(松浦賛治)의 기록 등을 검토하여 해당 시기 나가사키에서 쓰시마가 수우각을 입수한 구체적인 정황을 소개했다.<BR> 1776년, 쓰시마와 조선 간의 개시무역이 단절되었다고 판단한 막부는 매년 금 12,000냥의 지원금을 쓰시마에게 하사하기로 결정했다. 또한 막부는 쓰시마가 향후 나가사키에서 개시무역용 무역품을 조달하는 것을 금지하고 관영무역에 필요한 물품의 수량을 보고하도록 했다. 이에 쓰시마는 관영무역에 필요한 동남아시아산 4대 산물의 물량을 필요 액수보다 훨씬 많은 ‘허위’의 액수로 막부에 신고했고, 막부는 이 액수를 인정했다.<BR> 18세기에 전개된 막부의 나가사키 무역 축소정책, 동남아시아 현지의 상황, 1799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해산 등으로 인해 18세기 이후 4대 산물의 나가사키 반입량은 현저하게 감소해 갔다. 후추, 소목, 명반의 경우 막말까지 관영무역의 정액만큼 조선에 수출되었으나, 수우각은 조일 간의 교섭을 거쳐 1832년부터 조선에 동(銅) 3,000근으로 대납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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