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북마리아나 지역은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해군에 점령된 후 일본의 통치를 받았다. 1917년 설립된 서촌척식주식회사는 북마리아나 사이판에 제당소를 건설하고 농장을 개척하기 시 작하였다. 서촌척식이 1917년 말 전라남도 광주에서 노동자를 모집하고 이들을 1918년 1월 사이 판으로 데려감으로써 조선인의 북마리아나 지역 이주가 시작되었다. 1918년 이주 조선인들은 열악한 노동 및 생활환경에 불만을 품고 파업을 일으킨 끝에 대부분 본국으로 송환되었다. 이 경험으로 일본정부와 회사는 조선인들이 노동자로서 부적합하다는 인식 을 갖게 되었다. 그 결과 1920년대 내내 조선인의 북마리아나 지역 이주는 부진하였다. 1930년대 들어서 남양무역주식회사 취업이나 이민이 늘어나며 조선인 거주자가 증가하기 시작 하였다. 이 시기 조선인의 증가에는 조선인친목회도 영향을 미쳤다. 조선인친목회는 조선인의 남 양군도 이주를 위해 선전단을 파견하는 한편 직접 노동자 모집 알선에 나서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단체는 궁극적으로 조선인의 이익보다는 통제에 힘썼다. 더욱이 이 단체가 일본인 기부금으로 운영된 점, 일본회사의 조선인 모집책으로 기능한 점, 빈곤에 허덕이는 이민자를 양성한 점 등으 로 인하여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1939년 들어 조선인의 북마리아나 지역 이주는 큰 폭으로 증가하기 시작하였다. 이것은 남양흥 발주식회사의 조선인 노동자 모집이 적극 추진되며 나타난 결과였다. 조선인의 증가는 거주지 분 포의 변화도 수반하였다. 1920∼1930년대 북마리아나의 조선인들은 주로 시가지 지역에 거주하며 서비스업 및 운송업무에 종사한 것으로 파악된다. 그런데 1939년 남양흥발의 조선인 동원 이후 농장노동자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증가하게 되었다. 조선 내 출신지역도 남양흥발이 주로 호남지 역에서 노동자를 수급하였기 때문에 호남출신자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Full Text
Published version (Free)

Talk to us

Join us for a 30 min session where you can share your feedback and ask us any queries you have

Schedule a ca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