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모두 7차례에 걸친 경제개발 5개년 계획 기간(1962~1996)에 한국경제는 급속히 성장했다. 다만, 축적자본이 거의 전무했던 까닭에 국가차원에서는 해외자본, 기업차원에서는 타인자본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사채(私債) 금리가 월 2~3% 이르렀던 점이 시중 자금난을 대변한다. 대기업으로서는 이미지 훼손을 염려해서 차마 사채시장을 이용할 수는 없었고, 상업은행 혹은 이른바 “단자(短資) 회사”를 통해 긴급자금을 조달해서 하루하루를 넘기는 일이 많았다.BR 현재도 큰 차이가 없지만 당시에 운전자본 조달을 위한 외화차입은 금지됐다. 엄격한 규제와 긴급한 자금수요 사이에서 일부 대기업은 다양한 방법으로 사실상의 단기 외화자금을 조달했다. 규정의 허점을 파고든 것과 탈법적인 것이 뒤섞여 있었는데 어느 것이나 “핫 머니”를 우려한 정부정책에 배치된 변칙금융이었다. 본 사례연구에는 가장 일반적인 수출환어음의 선적전 매입에서 시작해서 각종 외화표시 운전자금 조달 방안, 외환 옵션을 가장한 외화차입 등 여섯 가지 유형, 열 두 종류의 기법을 통해 당시의 국가적 자금난 및 기업과 금융기관의 비상대처 방식을 소개한다. 기업입장에서 보면 변칙금융이 자금부족을 해소하는 소중한 기회였는데 고금리에다 환차손을 부담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당시는 금융비용보다 “자금조달” 자체가 관건이 됐다. 변칙금융을 제공한 은행 입장에서는 수익창출, 실적제고 등의 혜택을 얻을 수 있었다.BR 본 사례연구는 기업의 외화금융을 장기간 직접 관찰한 저자가 개인 메모 및 각종 문헌자료를 참고하여 저술한 것이다. 특정 기업 혹은 인물을 비난하거나 정부의 외환정책을 비판하자는 것이 아니며, 기록을 남겨서 기업 재무담당자, 정부정책 입안자, 기업 역사가 등에게 참고가 되도록 하고자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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