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한국전쟁이 끝난 후 사회주의 진영 국가들은 북한의 전후복구를 도왔는데, 동독은 함흥 복구를 추진했다. 이 사업은 1954년 구상되어 1962년 종료될 때까지 다음과 같은 요인들에 의해 확장과 축소에 이르는 많은 변화 과정을 겪었다. 첫째로 함흥 전후복구사업에 대한 북한과 동독의 목표에 일정한 차이가 존재했다. 동독이 인민생활과 직결되는 주택단지와 도시기반시설, 경공업시설 복구에 초점을 맞춘 반면, 북한은 중공업시설을 복구하여 경제성장의 기반을 닦고자 하였다. 둘째로 사업추진 과정에서 만성적으로 존재했던 물자부족 현상은 북한과 동독 사이의 불화를 지속적으로 일으키는 요인으로 작동했다. 동독 측은 물자부족으로 인한 사업지체의 책임을 시종일관 북한 측에 돌렸다. 셋째로 195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북한과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의 관계 악화, 그로 인한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의 쇠퇴는 이 사업이 축소 및 조기종료로 귀결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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