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성경구락부는 1929년 평양에서 킨슬러에 의해 처음으로 시작되었다. 일제시기 빈민아동의 구제로 출발하여 사회사업적인 특징이 강하였으나 점차 발전하면서 기독교 교육의 한 부분을 담당하게 되었다. 성경구락부는 해방 후 1950년대까지는 분단과 전쟁으로 교육의 기회를 얻지 못한 아동들에게 문해교육을 비롯한 사회교육을 진행하며 초등과정을 운영하였다. 1960년대 초반 초등의무교육이 확립되자, 교육대상을 청소년으로 확대하고 1970년대까지 ‘청소년성경구락부’라는 명칭으로 중고등부를 중점적으로 운영하였다. 성경구락부는 자체적으로 운영되기도 하였지만, 정규 학교로 전환되기도 하였다. 근로청소년들을 대상으로 각종 방계학교인 고등공민학교, 전수학교, 재건학교 등으로 병행하여 운영되기도 하였다. 성경구락부는 가장 빈곤한 계층의 아동과 근로청소년 교육에 전념하여 초·중등 수준의 교육기회를 제공하고 이들의 학습열을 담아냈다는 데 가장 큰 의의를 갖는다. 전후 어려운 시기에 구제와 교육을 아우른 점은 사회사업적 성격을 갖는다. 더불어 학생들의 자치역량을 강조하고 시민의식 형성에도 역점을 둔 것은 사회계몽교육으로서의 의의를 지닌다. 또, 농촌지역의 성경구락부는 교육과 계몽, 지역발전의 거점 역할을 하였다. 성경구락부의 기본목적은 기독교적 가치를 실천하는 인간 양성에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의도는 공교육이 확립되면서 제도권 교육내에서는 어려운 것이 되었다. 의무교육이 확대되고 공교육이 안정적으로 자리잡아가면서 조직력과 재정이 부족했던 성경구락부는 제도권 교육으로 편입되지 못하고 점차 소멸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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