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도쿄국립박물관 소장 〈車爭圖屛風〉은 기존의 다른 車爭圖와는 차별되는 새로운 도상의 車爭圖이다. 본고에서는 작품이 제작된 ‘당대의 풍속’을 표현한 점과 ‘행렬’, 그리고 ‘난투’라는 〈車爭圖屛風〉만의 독특한 도상적 특징에 대해 살펴보고 그러한 도상이 채택된 배경에 대해 다각적으로 고찰해 보았다. 〈車爭圖屛風〉이 전달하고자 한 메시지는 작품의 주문자와 그 설치공간과 관련된 사회 · 정치적 상황을 함께 고려해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 시공간적으로 별개인 두 사건을 하나로 연결시켜 새롭게 창조한 ‘행렬’과 다른 車爭圖에서는 그려지지 않았던 격렬한 ‘난투’ 도상은 〈車爭圖屛風〉의 賀茂祭 제례도적 성격을 강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또한 〈車爭圖屛風〉에 묘사된 작품이 제작된 ‘당대의 풍속’ 표현은 〈車爭圖屛風〉의 화면에 ‘새롭게 창조된 賀茂祭 행렬’이 마치 당대 거행된 賀茂祭인 것과 같은 느낌을 준다. 이러한 〈車爭圖屛風〉의 독특한 도상들은 이 작품이 원래 건물의 내부에 설치되는 미닫이문에 그려진 襖繪였다는 점과 관련 있다. 〈車爭圖屛風〉에서 4월의 봄을 대표하는 연중행사인 賀茂祭의 제례도적 성격이 두드러진 것은 『源氏物語』에서 사계절별 화제를 선택해 구성한 襖繪로서 기능하기 위한 것이었을 가능성이 크다.BR 한편 〈車爭圖屛風〉의 당대 풍속묘사는 源氏繪라는 장르의 작화 특성상 작품의 주문자인 九條家의 개입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車爭圖屛風〉이 제작될 당시 九條家의 수장이었던 九條幸家(1586~1665)는 당대의 권력자인 江戶幕府의 德川將軍家와 혼인관계를 맺으며 매우 친밀한 관계를 유지한 인물이었다. 九條幸家는 1619년에 발생한 정치적 사건인 ‘およつ御寮人 사건’에서 關白이라는 조정 최고의 관직에 복귀해 분쟁의 당사자였던 江戶幕府와 교토 궁정 사이를 중재하며 사건의 해결을 꾀했다. 새로 입궁할 德川將軍家 출신 중궁을 위해 천황의 총애를 받던 측실을 쫓아낸 사건인 およつ 御寮人 사건은 격렬한 난투로 묘사된 〈車爭圖屛風〉의 六條御息所와 葵上의 車爭 장면을 연상시킨다. 〈車爭圖屛風〉의 화면 곳곳에 그려진 德川將軍家의 문장이 그려진 옷을 입은 무사들은 이 작품과 江戶幕府와의 관련성을 시사한다. 또한 賀茂祭를 주관하는 賀茂神社의 문장인 葵이 德川將軍家의 문장과 동일하다는 점도 賀茂祭를 배경으로 하는 車爭 장면이 작품의 화제로 선택된 이유가 德川將軍家와 관련 있음을 암시한다.『源氏物語』연구를 가학(家學)으로 삼을 만큼 『源氏物語』에 조예가 깊었던 九條家가 가문의 저택 내부에 설치할 源氏繪 襖繪의 화제로 およつ御寮人 사건을 연상시키는 車爭 장면을 선택한 것은 분명 의도적이었다. 九條家는 당대의 권력자인 江戶幕府와 교토 궁정과의 분쟁에서 막부의 이익을 대변한 가문의 공적을 〈車爭圖屛風〉을 통해 공공연하게 드러내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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