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이효석의 『화분』은 ‘애욕의 만화경’이나 ‘자연 상태의 난혼(亂婚)’을 통해 ‘색정의 유희’가 중심이 되는 일탈적 성을 보여준다. 이로 인해 겉으로는 자유분방한 일탈적 성을 보여주면서도 기존의 성 모랄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거나, 여성의 성과 육체를 관음증적 대상으로 물화(物化)시킴으로써 남성 중심적인 시각을 강화하고 있다는 부정적 평가가 주로 제기되었다. 일제 말기의 시대 상황을 고려할 때도 이런 성의식을 통해 피식민주의자의 현실 순응을 보여주는 탈정치적이고 비역사적인 텍스트로 폄훼되었다. 그러나 남성과 여성의 관계뿐만 아니라 남성과 남성 간의 관계 혹은 남성 자체의 내면도 함께 논의할 수 있는 ‘남성성(masculinity)’의 개념을 도입하면 이 소설이 지닌 젠더적 권력 관계와 역사적 배치를 보다 입체적으로 문제 삼을 수 있다. 『화분』자체가 당대에 요구되었던 헤게모니적 남성성이 어떻게 주변화된 남성성의 도전과 저항에 의해 균열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작품이기 때문이다.BR 『화분』에서 파격적으로 묘사되고 있는 ‘남성동성애(homo sexual)’는 그리스식 소년애로부터 출발하여 순수하게 남성과 남성 간의 성적인 끌림을 보여주는 진보적 성 의식을 보여주었으나, 점차 이성애를 기반으로 한 ‘남성동성사회(homo social)’의 특성과 착종을 일으킨다. 여성만이 아닌 남성의 육체조차 관음증적 시선으로 대상화함으로써 남성동성애를 남성과 남성이 아닌 ‘여성화된’ 남성의 성관계로 변질시키고 있기 때문이다.(2장) 이런 착종 현상은 ‘아름다운 남성’이라는 관념 자체가 허상에 불과함을 확인시켜준다. 아름다움 자체가 상품 혹은 재산으로 기능하기에 가부장적 자본주의 하에서의 상하관계를 그대로 노출시킨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도전받지 않는 가부장과 재산가로서의 남성성 또한 아름다움이라는 허상과 더불어 그 실체를 잃어버리게 된다.(3장) 이런 위기의 남성성은 박탈당한 처녀성을 적극적으로 거래하는 여성과 그런 여성의 인정을 필요로 하는 남성성으로 인해 더욱 약화된다. 탈아적(脫我的) 인정 욕망을 통해 남성성은 이중으로 구속되는 것이다.(4장)BR 이런『화분』 속 남성성의 균열 양상을 곧바로 작가의 페미니즘적 인식과 연결짓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그러나 불완전하고 불안정한 남성성을 통해 작가는 일제말기 부계공동체나 민족국가의 중심에 위치했던 ‘강한 남성성’이라는 상상 혹은 환상 자체를 (무)의식적으로 내파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강한 남성성에 향수를 느끼면서도 그런 전형적 남성성과는 거리를 두는 이중성을 통해 ‘친밀한 낯섦’이 아닌 ‘낯선 친밀감’으로 ‘젠더 허물기(undoing gender)’를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허물어진 젠더를 통해 작가는 단순히 성의 해방이나 타락 자체가 아니라 그로 인해 재구성되는 남성 젠더정체성에 주목했다고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당대의 우울과 혼란을 반영하는 남성성은 현재에도 여전히 재구성 중에 있는 허약한 젠더 구성물임도 재확인시켜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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