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조선시대 내의원은 전의감에서 분설된 기관이었으나 국왕과 왕실의 의약을 전담하는 기관으로서 내의원에서 근무하는 의원은 전의감보다 그 위상이 높았다. 이는 태종대에 내의원에서 잘못을 저지른 의원이 전의감으로 내쳐졌던 일이나, 내의원 의원 출신으로 임금의 신임을 받아 포상을 받거나 외관을 제수받은 이의 숫자가 다른 잡직에 비해 월등이 많았던 사실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내의원 의관은 비록 잡과를 통해 출사한 기술관이었으나 그 업무가 국왕을 비롯한 왕실 일원의 생명과 관계된 일이었으므로 이들이 본업에 정진하지 않아 의술이 폐하게 되면 종사의 안위가 위태롭지 않을 수 없었다. 따라서 조정에서는 이들에 대한 처우에 고심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 본업인 의업에 충실하게 하되 이것이 지나쳐 의관이 되기를 기피하도록 하여서도 안 되었고, 반대로 의관에 대한 임금의 신임이 지나쳐 이들이 정사에 영향을 미칠 정도가 되는 것도 경계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양반사족들의 견제에도 불구하고 내의원 의원들은 최고의 의술을 보유한 전문가 집단으로서 조선 사회에서 널리 인정받았으며 사행길에 동행하여 약재를 거래하고 지방에서 진상할 약재의 종류와 수량을 결정하는 일에 관여하면서 부를 축적하였다. 특히, 19세기에는 자신들의 전문지식을 활용한 개인 약방을 개설하여 상당한 정도의 경제력을 보유한 독자적인 계층으로 성장하였으며 이러한 경제력은 중인 계층의 신분 상승에도 영향을 끼쳤다. 내의원에서 수행하였던 다양한 기능과 조선 정부가 취했던 내의원 의관들에 대한 처우에 대해 살펴보는 일은 조선 사회의 기술관에 대한 인식과 이들이 차지하고 있었던 위치를 파악하는 데 유용하다. 내의원 운영의 실제 모습을 구체적인 사례를 통하여 살펴봄으로써 조선 정부의 관제 운영의 일 단면을 더욱 심도있게 이해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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