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정한론은 ‘정한’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았던 것일까? 메이지 유신을 전후한 시기의 관련 언설들을 분석해 보면, 실제로는 정파별로 전혀 상이한 정략적, 혹은 정책적 목표들을 담아 넣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와중에서 정한, 즉 조선이라는 요소는, 오히려 그런 목표들을 위한 ‘방편’으로서 활용되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왜, 또 어떻게 이런 방편은, 이즈음 일본의 조야에 이토록 폭넓게 자리 잡게 되었을까? 다시 말해 정한이란 잠재적인 사상요소는,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을 거쳐 정략이나 정책상에서의 실제 활용에까지 이르게 된 것일까. 이하에서는, 쓰시마 측이 양국 관계에서 자신들이 점하고 있는 중요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어떤 일련의 위기론들을 안출해 냈는지, 그것이 마침내는 “조선의 위기”에 대한 선제적 대응론으로 변용 되었는지를 분석하였다.

Talk to us

Join us for a 30 min session where you can share your feedback and ask us any queries you have

Schedule a call

Disclaimer: All third-party content on this website/platform is and will remain the property of their respective owners and is provided on "as is" basis without any warranties, express or implied. Use of third-party content does not indicate any affiliation, sponsorship with or endorsement by them. Any references to third-party content is to identify the corresponding services and shall be considered fair use under The CopyrightLa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