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무로부터의 창조는 창조론의 핵심 교의다. 문제는 무로부터의 창조 개념이 성경에 근거하느냐이다. 하느님이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는 것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창조하셨다는 것을 의미하기에, 여기에 이미 무로부터의 창조 개념이 함축적으로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지혜 문학(시편 90,2 참조)은 하느님과 피조물의 관계를 ‘낳다’ 동사를 사용하여 하느님과의 관계를 친밀하게 묘사한다.BR 2마카 7,28은 육신의 부활의 근거(2마카 14,46 참조)로 하느님이 이 세상을 존재하는 것으로부터 창조하지 않았다(ouvk evx o;ntwn)고 말한다. 2세기 영지주의자들과의 논쟁에서 호교론자들은 2마카 7,28에서 무로부터의 창조 정식을 이끌어 낸 것이다. ouvk evx o;ntwn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부터는 아무 것도 나오지 않는다는 그리스 철학의 명제를 정면으로 뒤집는 것이다. 2마카 7,28의 의미가 예수의 부활과 관련되어 로마 4,17에 등장하고, 창조는 부활로 완성되는 신학으로 전개되었다. 중요한 것은 무로부터의 창조가 그리스 존재론에 배치되듯이, 육신의 부활도 그리스적 영혼 불멸의 개념과 상치된다는 점이다. 아레오파고스의 바오로 설교(사도 17,22-31 참조)는 스토아적 개념을 원용하여 하느님의 창조를 설명하되, 육신의 부활로 그리스 사상의 한계를 넘어선다. 이처럼 성경은 무로부터의 창조와 육신의 부활 고백을 통해 하느님의 절대적 주권을 드러내면서도 하느님의 자녀 개념을 우리 모두가 하느님에게서 출산했다는 유비 개념을 통하여 하느님과의 연대성을 표현한다.BR 만물이 그분에게서 나와 그분을 통하여 그분을 향하여 나아간다(로마 11,36 참조)는 바오로의 선언은 스토아 철학의 틀 안에서 창조와 구원을 포괄하는 신학적 토착화의 한 표현이라고 하겠다. 성경의 저자들은 무로부터의 창조와 육신의 부활에 대한 매우 성서적인 믿음을 당대의 종교와 철학의 틀을 활용하면서도 성서적 메시지의 고유성을 표현할 줄 알았다. 과학이 주도하는 현대 세계에서 교회는 무로부터의 창조를 어떻게 이 시대의 언어로 선포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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