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청도 운문사의 작압전에는 석조여래좌상 1구와 사천왕석주가 있다. 운문사 작압전의 사천왕석주 4구와 석조여래좌상은 『삼국유사』 ‘보양이목’조에 기록되어 있는 보양국사가 건립한 작갑사의 5층 전탑에서 유래하였다고 생각되는데, 현재 작압전과는 다른 위치에서 다른 형태로 존재하였을 것으로 판단된다. 절 안에는 목탑의 사리공을 닮은 석괴가 있어 이것이 전탑의 사리를 봉안하였던 사리공으로 생각되고 전탑 중심의 지표면이나 지하에 위치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사리장치의 위쪽에는 목탑의 사천주처럼 사리장치를 보호하는 중심주가 있었을 것으로 여겨지는데 그 역할을 한 것이 바로 사천왕석주로 생각된다. 이들 중 동과 서, 남과 북의 사천왕상이 각각 비슷한 높이를 가지고 있어서 서로 등을 마주하고 밖을 향하여 사리를 외호하는 모습으로 서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석조여래좌상은 대좌와 광배를 두루 갖추고 있음에도 크기가 매우 작다. 대좌는 하대가 육각형인데 특이하게도 좌우로 넓고 앞뒤가 좁다. 이렇게 특이한 형태의 불상은 아마도 높이가 낮고 앞뒤가 좁은 공간에 배치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현재는 하나의 불상이 독존으로 있으나 원래는 4구의 불상이 중심에 선 사천왕상 앞에서 동 · 서 · 남 · 북의 문을 내다보는 위치에 각각 봉안되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동 · 서 · 남 · 북에 각각 봉안되어 있었던 석조여래좌상은 세월이 흘러 전탑이 무너지고 이건하는 등의 변화를 거치면서 현재와 같은 건물에 하나만 남은 불상이 독존으로 모셔진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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