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본 글은 초창기 북한 고고학의 상황을 새로운 시각으로 제시하기 위해 한국 고고학의 태동기에 해당하는 일제강점기의 사회적 환경을 검토하였고, 이러한 상황이 도유호라는 한국 고고학자의 연구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 고찰하였다. 도유호는 잘 알려진 대로 남북한 고고학의 선구자로, 오스트리아 빈에서 당시의 최신 고고학을 연마한 최상위 인텔리이다. 이러한 도유호의 초창기 활동을 추적하고 관련 자료를 수합해서 그가 월북 후 수행한 각종 고고학적 연구 성과의 전반적인 성격을 밝히는 것이 본 글의 중요한 과제이다. 이를 살피는 과정에서 도유호의 벗이자 학문적 라이벌인 한흥수 및 도유호의 몰락과 동시에 등극하는 북한 사학계의 수뇌인 김석형과의 관계와 업적들을 상호 대비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인물들이 보여준 여러 갈래의 길항(拮抗)관계 및 그 관계가 이끌어 낸 해방 전 후기 당시의 초창기 북한 고고학 상황을 관찰하였다. 이러한 작업을 통하여 현재 김일성대학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 북한 고고학 국제화 작업의 연원 및 그 성격을 파악할 수 있었고, 차후 이러한 작업이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질지에 대한 고찰의 필요성을 제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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