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황금찬(1918~2017)은 강원도 속초 출생으로서 1940년대 후반부터 잡지 『기독교가정』등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정식 등단은 1953년(1회)『문예』, 1954년(2회)과 1955년(천료) 『현대문학』을 통해서이다. 시인으로서의 본격적인 출발은 늦었지만, 1965년 첫 시집 『현장』을 상재한 이후로는 왕성한 활동을 펼쳐 작고 시까지 발행한 시집만도 40여 권에 이르는 방대한 작품세계를 지니고 있다. 생존 당시 현역 최고령 시인으로서의 상징성을 지녔을 뿐만 아니라 지속적인 창작 활동을 통해 문학세계의 일 경지를 구가한 작가였음에도 불구하고, 황금찬 시에 대한 학술적 조명은 지극히 미약한 실정이다. 황금찬 시세계에 대한 객관적 평가나 문학사적 정리를 위해서 심층 논의가 요청되는 시점이다. 황금찬의 습작기 작품들은 이주에 따른 실존적 배경과 다양한 장소성을 반영하고 있다. 등단작의 경우 자연을 소재로 하는 전통 서정의 양식에 생의 관조적 성찰이 결합된다. 단순한 묘사 속에서 정제된 감각적 표현이 시적 효과를 자아내는 양상이다. 1950년대 초반이라는 시대적 배경이 작동한 까닭이겠지만 서정적 언어에 존재론적 비애를 특화시키는 구조가 인상적이다. 등단 이후 본격화된 황금찬의 초기 시세계에는 순수 서정과 생활 감정의 형상화가 두드러진다. 구체적 경험을 서사 형태로 진술하면서도 ‘소녀’나 ‘나비’ 등의 중심 모티프를 구조적으로 각인시키는 형국이 흥미롭다. 황금찬의 초기 문학 활동은 고향 인근 지역의 문학장을 형성하고 전개시키는 데에 주요한 역할을 하였다는 점에서 주목을 요한다. 이는 텍스트 너머에서 황금찬시가 파생하는 문학사회학적 의미라 할 수 있다.『청포도』를 2집까지 발간한 ‘청포도동인회’ 활동이 그 단적인 사례이다. 또한 같은 동인으로서 시인 최인희와의 문학적 교류, 후배 문인 신봉승과의 관계 등이 이와 관련하여 특기되어야 한다. 청포도동인회 활동 당시 황금찬 시는 친자연적 소재에 천착한 주정적 묘사 중심의 양상을 보인다. 적절한 시적 긴장을 동반하는 황금찬식 리리시즘의 지평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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