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이 글의 목적은 김현 초기 시 비평의 위상과 면모를 당대적 맥락 속에서 살펴보고 그 의미가 무엇일지를 상고하여 현재에 비추는 것이다. 초기 김현 비평의 중요한 문제의식들은 “경험적인 것을 선험적인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어떻게?”라는 질문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선험적인 것과 경험적인 것에 대한 사유로부터 촉발된 귀납적 보편에의 요청, 그리고 이에 대한 답변으로서의 문학의 고고학을 논의의 초점에 놓고 보자면, 1967년에 발표된 「시와 암시-언어파의 시학에 관해서」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글은 말라르메의 암시의 시학을 통해 1967년 당시 한국의 시단을 조망하되, 암시의 시학이 한국적 조건에서 성립되기 어려운 이유를 천착하는 글이다. 김현이 보기에 언어파의 도래는 1967년 현재 이미 한국 시단에 발생한 사건이다. 이들의 시적 특징은 암시의 시학에 의해 가장 잘 설명되는데 암시의 시학이 한국적 상황에서 타당한 존재 이유를 가지고 이해를 구하려면 그 구성적 조건인 수직적 이원론이 필수적으로 요청되는 것이라고 하겠다. 다만, 이때의 수직적 이원론은 플라톤으로부터 기독교적 전통에 이르기까지의 서구에서와 같은 방식이 아니라 한국적 상황 속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김현은 이를 “수직적 이원론의 토착화 문제”로 규정하고 있다. 결국 이미 도래한 언어파의 시는, 한국의 제반 문화적 근저가 수직적 이원론의 토착화 방향으로 진행된다면 가장 설득력 있고 절실한 호소력을 얻으며 한국시의 한 이념형에 가닿게 될 것이요, 그렇지 못한다면, 구조로부터 발원하는 것이 아니라 형식만을 ‘선험적으로’ 차용한 것에 지나지 않게 되리라는 것이 이 대목에서의 김현의 진의로 읽힌다. 김현이 이런 맥락에서 궁구한 문학(문화)의 고고학은 얼마간 바로 이찢긴 위치의 좌표들로 구성되어갈 성질의 것이었다. 김현의 시 비평 초기에 엿보이는 흥미로운 양상 중 하나인 ‘이미지 계보학’은 바로 그런 좌표들을 그러모으는 예비작업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1960년대부터 1970년대 초입에 이르는 동안 우리 시단은 양적으로 비약적으로 성장했을 뿐만 아니라 질적인 측면에서도 새로운 실험을 거듭하며 활로를 새롭게 모색하고 있었다. 바로 이 시점에 김현은 한국시를 전체적으로 조망하면서도 연역적 재단을 피하는 방법을 모색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본문에서 살펴본 김현의 여러논의들은 결국 귀납적으로 구체적 실천들에 주목하고 이를 통해 실천들로부터 추상되는 보편을 만들어가고자 하는 시도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는 문학활동 초기의 자신의 태도에 대한 반성에 기초해 한국적 상황에서의 정신사적 맥락과 결락을 토대로 당대에 다방면으로 전개되기 시작한 한국시의 이념형들의 성과와 가능성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것은 결국 한국시의 이념형을 추상하기 위해 고고학적 태도와 귀납적 방법에 기초한 작업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의 의미를 반추하게 한다. 2020년대의 오늘을 위해서도 바로 그런 귀납적 감각에 기초한 한국시사의 사후 재구성 작업은 새삼 절실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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