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필자는 원대의 東寧府, 東寧路, 명대의 東寧衛가 상호 연관되어 있다는 관점에서 동녕의 위치를 재고해 보고 이와 관련하여 고려와 원, 조선과 명의 국경 문제를 검토해 보고자 하였다. 검토해 본 결과 원대 설치된 동녕부에 대한 중국의 사료와 한국의 사료가 다르게 기록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高麗史』나 『高麗史節要』의 경우 동녕부와 관련하여 기록은 많으나 그 위치를 명확하게 기록하지 않고 있다. 반면 새롭게 발굴된 중국 사료들은 장수왕이 천도한 平壤城, 동녕부의 위치, 동녕부와 동녕로와의 상관성, 그리고 명대 동녕위에 이르기까지 그 연속적인 시간 속에서 모두 현재의 요녕성 요양과 그 부근을 그 중심지로 서술하고 있다.BR 중국의 방대한 사료들은 원대 동녕부는 장수왕의 평양성이 있던 장소이며 장수왕의 평양성은 후에 西京으로 되고 이 서경을 최탄 등이 60여 성과 함께 귀부하여 동녕부가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BR 『고려사』의 기록은 1270년에 동녕부가 되었다가 1290년을 전후하여 폐치되는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의 기록들은 동녕부가 동녕로로 승격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이 동녕로는 遼陽行省을 구성하는 7개의 路중의 하나인 동녕로가 되었다고 적고 있다.BR 고려 말의 고려의 동녕부 정벌은 지금의 환인과 요양을 포함하는 요동 지역이 대상이었으므로 동녕부가 동녕로로 승격해서 원 후기까지 요동에 동녕이 남아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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