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이 시대는 산업자본주의와 물질만능주의가 지배하고 있다. 한국의 기독교도 예외는 아니어서 교회의 진리를 버리고 세상의 가치를 추구하고 있다. 그러나 개화기나 일제강점 초기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의 개신교회는 암울했던 상황을 타개하는 데 앞장섰다. 당시에는 교회와 민족이 희망을 품은 채 한 방향을 향해 나아갔으며, 비록 교인 수는 적었지만 세상을 선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초창기와는 다르게 오늘날의 교회는 반역사적이며 반이성적이고 심지어는 반성서적인 양상을 보이기도 하여 비판의 중심에 서 있다.BR이러한 상황에서 구한말에 태어나 일제강점기에 한국과 하와이에서 독립운동을 펼쳤던 근곡 박 동완(1885.12.27.—1941.2.23.)의 삶은 표류하고 있는 한국교회를 향해 올바른 방향을 제시할 수 있다. 3·1독립운동 당시 민족대표 중 한 사람이었던 그는 대표적인 기독교계 비타협적 민족주의자로서 신간회 창립 및 운영에 있어 중추적 역할을 하였다. 또한, 민족언론의 암흑기라 할 수 있는 1910년대 한글로 된 유일한 민족언론지 「기독신보」의 초창기 주필을 지냈다. 그뿐 아니라 여름성경학교를 국내 최초로 개최하고 전국적으로 확산하는데 공헌하였으며, 하와이 망명 이후에는 한인교회와 한글학교를 통하여 후대를 양성하였다. 그는 전 생애에 걸쳐 독립운동가, 기독언론인, 교육목회자의 삶을 동시에 감당하였다. 본 연구는 문헌연구 방법에 의존하여 당시에 발간된 신문이나 잡지에서 그가 남긴 글과 행적을 살펴보고, 그가 속하였던 단체와 교회의 역사를 추적하여 그에 의해 펼쳐진 기독교민족운동을 밝힌다. 이 작업은 위기상황에 처한 우리 시대의 기독교공동체는 물론, 민족의 분단, 이념과 계층의 극단적 대립 및 갈등상황을 겪고 있는 비기독교인들에게도 울림 있는 가르침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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