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본 논문은 국교정상화 20주년이라는 대의명분하에 ‘우호 관계 증대와 친선강화’로 진행된 천황의 중국 방문에도 불구하고 중일(中日) 양국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원인을 명확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쇼와[昭和] 천황의 사망 후, 즉위한 아키히토 천황은 쇼와 천황 재위 기간에는 불가능했던 아시아 순방길에 오르게 된다. 아키히토 천황의 1992년 중국 방문은 전후(戰後) 일본 ‘황실외교’에 있어서 최초로 ‘아시아·태평양 전쟁’의 상흔이 지워지지 않은 동북아시아에 첫발을 딛고 ‘오코토바’를 낭독한 역사적인 순간으로 그 의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천황의 중국 방문은 천안문 사태 이후 중국의 국제적 고립을 타개하기 위한 돌파구로써 중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추진했지만, ‘아시아·태평양 전쟁’의 과거사 문제의 결착을 보기 위한 일본 정부의 전략과도 밀접하게 연관되었기 때문에 일본 국내의 신중론과 반대론을 물리치고 추진되었다. 그러나 과거사 결착 없이 중국 인민의 사회적 합의 없이 국제적 고립 타개라는 중국 공산당의 외교 방책 중 하나로 추진되었기 때문에 양국 간의 과거사 문제는 본질적으로 해결되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이러한 한계로 인해 천황의 방중의 의의는 퇴색되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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