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2019년 4월 공주대학교박물관은 공산성 출토 칠갑의 보존처리 결과를 공개했다. 추가로 확인된 자획과 파편의 접합을 통해 명문의 실체에 다가갈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공주대학교박물관 이현숙 · 양종국은 새롭게 밝혀진 명문을 바탕으로 다시 백제 제작설을 제기하였다. 이에 명문의 전모를 해석하고 백제 제작설을 검토해 보았다.BR 이현숙 · 양종국은 칠갑의 명문을 고구려 원정 중인 태종에게 갑옷을 선물하는 ‘국가적 의례’를 치르고 이를 기록한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개주의 설치 일자(645년 6월 3일)에 대한 고려 없이 칠갑의 일자(645년 4월 21일)를 근거로 익주를 개주로 판독한다거나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𢃆’(下裳)을 郡이나 群의 이체자로 파악하는 오류를 범하였다. 그리고 당에는 황칠 철갑을 보내고 그 기록을 옻칠 피갑에 남겼다는 것이나, 주장대로라면 당과의 우호 관계를 보여줄 수 있는 갑옷임에도 마치 종묘의 기물인 듯 항복 시점에 폐기하는 의례를 치르고 감추었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설정이다. 이밖에도 백제가 자국의 기록물에 당의 연호를 사용했다거나 백제에서 행수법을 실시했을 수 있다는 가정은 지금까지의 백제사 연구 결과와도 부합하지 않는다.BR 칠갑 명문은 당령 규정에 근거한 제작 주기이며, 내용은 제작지, 제작소, 제작 담당자, 감독관, 갑옷의 구조, 일자이다. 제작지는 익주이며, 담당관의 관명은 모두 당의 관제로 일개 도독부의 문서행정 계통에 따라 기입되었다. 아울러 산관 · 직사관 · 훈관의 병렬방식이나 행수법의 적용 등은 당의 관제가 아니고서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리고 연호 역시 당의 연호이다. 따라서 칠갑의 제작지는 당일 수 밖에 없다.BR 명문은 칠갑이 당의 제작품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칠갑의 가치는 정확한 이해에 기초해야 하며, 명문의 정확한 해석은 그 출발점이다. 명문의 석독은 도외시한 채, 백제 갑옷으로 전제하고 끼워 맞추기식의 가설을 제시하는 것은 오히려 칠갑이 지닌 가치의 발견과 연구의 진전을 가로막는 장애물이자 발굴성과를 무색케 만드는 일이 될 것이다. 남아있는 칠갑의 명문 전모가 확인된 만큼 이제는 유구로 칠갑의 국적을 규명할 때가 아니라 칠갑으로 유구를 해석할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Talk to us
Join us for a 30 min session where you can share your feedback and ask us any queries you have
Disclaimer: All third-party content on this website/platform is and will remain the property of their respective owners and is provided on "as is" basis without any warranties, express or implied. Use of third-party content does not indicate any affiliation, sponsorship with or endorsement by them. Any references to third-party content is to identify the corresponding services and shall be considered fair use under The CopyrightLa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