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선사(禪師) 성철은 많은 불교 고서를 소장했고, 그의 입적 후 그 문헌은 여전히 백련암에 소장되어 있다. 그 문헌 중에는 근대시기 중국의 여러 각경처에서 각인된 서적이 많다. 그들 간행처 가운데 가장 중요한 곳은 난징 소재 금릉각경처이다. 그곳은 근대시기 중국 불교 부흥의 결과였고, 특히 그 가운데 유식문헌은 중국불교가 일본불교와 교류한 결과였다. 그것은 또한 ‘전통과 근대’의 결합이기도 했다. 금릉각경처본 유식문헌에 제한해서 보더라도, 그것의 한국 전래와 유통은 한국불교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조선시대이후 전통적인 불교 교육과 연구에서 유식학(唯識學)이나 인명학(因明學)은 관심 밖의 것이었다. 하지만 근대들어 인명학과 유식학은 불교 지식의 중요한 부분으로 전환했다. 이 전환의 배경은 무엇일까? 근대시기 한국불교에서 새로운 불교지식은 ‘일본불교’라는 과정을 거쳐 획득하는 게 일반적이었지만 금릉각경처각본 유식문헌을 통해서 우리는 ‘중국 근대불교’라는 불교지식의 연원이 하나 더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백련암소장 금릉각경처본 유식문헌은 사실 한국 근현대시기 불교지식이 다양한 방식으로 확장했고, 동아시아 차원에서 교류했음을 보여준다. 비록 현재까지 고승 성철이 그 문헌을 어떤 식으로 활용했는지는 분명하게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것이 그에게 의미 있는 역할을 했으리라 추측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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