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한국교회 선교 초기 미국의 보수 신학교 출신이던 북 장로교 파송 선교사들은 한국교회 예배의 기틀을 세우는 데 큰 역할을 담당했다. 마포삼열은 1895년 최초의 한국장로교 예배 관련 문서인 󰡔위원입교인규됴(爲願入敎人規條)󰡕를 썼고, 이어서 곽안련의 󰡔목회학(牧會學)󰡕 이 1925년에 출판되었다. 이로부터 9년 뒤 1934년 소열도가 󰡔례배첩경(禮拜捷徑)󰡕을 출판하였다. 약 40여 년에 달하는 기간 동안 발간된 평양장로회 신학교 교수 선교사들의 예배 관련 문서를 살펴보면 각 시대의 교회와 예배현장의 정황과 선교 초기 한국장로교 예배변천에 대해 이해를 할 수 있다. 특히 한국교회 초기 네비어스 정책으로 인한 자립 중시로 평신도의 예배 인도와 설교가 적극적으로 권장되었음을 볼 수 있고 점차 주일 낮 예배는 목사에 한해 설교할 수 있도록 제한이 되면서 축도나 성례도 목사에 의해서만 행해지는 것으로 제한 되어 감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곽안련이 제안한 예배순서에 ‘죄의 고백’ 등을 넣는 일련의 예전 강화 노력은 실제 현장에서는 특별한 실현이 되지 못하였고 이른바 변방예배 형태를 계승한 간단하고 실용적인 예배 형식으로 정착됨을 살펴볼 수 있으며 주일 대예배, 찬양대 등의 용어사용을 통해 지금부터 약 100여 년 전 한국교회에서 사용한 예배 용어 등의 면면을 알 수 있다. 또한, 선교 초기 유아세례 자의 나이 제한에 대한 특별한 언급이 없다가 점차 그 기준이 생겨나고 한국교회 초기부터 설교자의 인기도에 따른 예배 참석 인원의 편차가 생겨났고 이로 인해 하나님만 영광을 받으셔야 한다는 예배의 본질이 흐려져서 설교자에 집중하는 흐름이 있었음도 볼 수 있다. 이에 따라 하나님께만 경배해야 한다는 예배의 본질 회복에 집중하는 당대 선교사들의 노력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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