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이 글은 조선에 입국한 초기 선교사의 사택을 통해 서구의 근대물질문명이 유입되고 경험되었 음을 밝히는 종교사회학적 연구이다. 초기 선교사 사택들은 안정적이고 독립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다. 이들은 본국에서 살았던 방식에 맞게 주택을 신축하거나 기존 주택을 매 입해 개조하였다. 신축 시, 이들은 유럽풍 주택을 선호하였고, 기존 주택을 매입할 경우에도 내부 는 서구식으로 개조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들은 가구부터 식료품에 이르기 까지 각종 서양 물품을 주택 내에 비치하여 이를 기반으로 서구식 삶을 유지하였다. 선교사 주택이 선교사들에게 사적인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때로 전도의 목적으로 자신들의 주거공간을 조선인들에게 개방하였 다. 사택을 구경 온 조선의 일반 대중들은 서구의 자본주의와 물질문명의 결과물들을 직접적으로 목도하게 되었고, 이런 그들에게 선교사들은 서구의 물질적 번영을 기독교와 인과적 관계로 연결 시키며 포교를 시도하곤 하였다. 이 같은 시도와 노력으로 인해 개신교는 조선인들의 의식 속에서 경제적 힘이나 풍요와 연결되었고, 이렇게 형성된 물질적 이미지는 이후 선교 활동이나 교회 성장 에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기독교와 물질문화의 연결은 때로 ‘라이스 크리스천’과 같은 문제를 일 으켰고, 더 나아가 기독교가 청빈보다는 풍요와 번영의 종교로 자리 잡게 되는 토대가 마련되기도 하였다. 선교사 주택과 그 안에서 재현되었던 서구식 삶의 모습이 기독교의 물질적 이미지를 구축 되는 데 있어 일정부분 역할을 하였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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