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이 논문은 일본점령기(1937-1945년) 상하이의 도시공간을 중심으로 이동제한을 도구로 삼아 콜레라 백신접종이 확대되어 가는 과정을 분석하고, 일본의 식민권력이 백신접종을 중시한 원인을 살펴본 것이다. 나아가 보편접종을 둘러싼 논쟁을 분석하여 강제적 백신접종에 대한 주민들의 인식을 밝혔다.<BR> 콜레라는 콜레라균에 오염된 물이나 음식을 통해 감염되며,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면 사망률이 50-60%에 이르는 무서운 병이다. 상하이의 방역을 담당하게 된 일본에게 콜레라와 같은 무서운 전염병의 유행은 일본 의학의 우수성을 알릴 좋은 기회이자, 일본 식민권력의 점령지 통치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위기이기도 했다. 콜레라는 대표적인 수인성 전염병으로, 콜레라 유행의 근본적인 대책은 상하수도 시설의 정비나 식품위생의 감독이다. 그러나 중일전쟁으로 인해 생겨난 난민수용소를 중심으로 콜레라의 유행이 심각한 상황에 이르자, 많은 인력과 물자, 시간이 필요한 도시위생 인프라의 정비보다는 백신접종이 주목받게 되었다. 또한 일본은 국가가 직접적으로 환자를 격리하고 감염이 퍼지지 않도록 통제하며, 치료보다 예방에 치중하는 독일식 의학의 영향을 받았다. 따라서 상하이에서 일본의 콜레라 방역책도 통제를 기반으로 하여 강제적 백신접종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주요 통행로에서 접종증명서를 검사하여 접종서가 없으면 강제로 접종을 했다. 또한 접종증명서가 있어야 버스를 이용하거나 다른 지역으로 출입할 수 있었다. 많은 중국인과 외국인들이 이동을 위해 콜레라 백신접종을 받았다. 물론 상수도 시설정비와 무료 수도전 설치 등도 병행하였으나, 가장 많은 공을 들인 사업은 백신접종이었다.<BR> 이동 제한 때문에 백신을 접종했다는 사실은 중국인들이 백신접종을 꺼렸음을 보여준다. 중국인 사이에서는 일본의 백신접종 주사는 독이라서 맞으면 죽는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일본은 백신접종을 강제하기 위해 접종증명서가 없으면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없게 하는 정책을 계속 강화했다. 백신의 부작용이 발견돼도 무조건 모두에게 백신을 맞춰야 한다고 여겼다. 이러한 태도의 근저에는 공공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소수의 개인은 희생해도 좋다는 생각이 깔려있다. 비록 개인의 자유가 침해받더라도 공공의 안전을 지킬 수 있다면 보편접종을 해야 하며 부득이하게 희생자가 발생하여도 어쩔 수 없다는 공공위생전문가의 주장은 이러한 생각을 대변한다.<BR> 일본점령기 백신접종을 맹신하고 옹호하며 이용하는 식민권력의 강경함 앞에서 백신접종을 우려하는 목소리는 묻힐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1943-1944년 콜레라의 유행이 멈추기도 했다. 보편접종 정책으로 인해 백신 접종자 수가 늘면서 일종의 집단면역이 일시적으로 유지되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일본은 백신접종을 통해 콜레라가 통제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강제적 백신접종 정책을 유지했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의 종식과 함께 일본군은 상하이를 떠났지만, 일본식 방역책은 상하이시정부의 방역책에 그대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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