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흔히 우리나라 대다수의 고소설이 가진 주제를 ‘권선징악’이라 말한다. 본 연구는 이러한 ‘권선징악’적 주제의 연원에 유 · 불사상이 핵심적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음을 밝히고자 한다. 판소리계 소설은 조선 후기 전 계층의 사랑을 받은 국민 예술인 판소리의 내용을 소설화한 작품 계열이다. 당대 독자들에게 널리 읽히려면 심미적, 이념적으로 당대 독자들의 가치관과 맞아떨어져야 했을 것이다. 따라서 조선시대에 향유된 그 어떤 소설보다도 당대 독자들의 요구와 기대에 밀접하였을 것이다. 판소리계 소설에서 형상화된 인물과 주제의식은 결국 조선후기 한국인들의 가치관의 지표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BR 본 연구는 한국사회에 유입되어 오래 전부터 가치관 형성에 심대한 영향을 끼친 유학과 불교의 인간관과 세계관을 살펴 그 공통점을 정리하여 본 연구의 이론적 배경을 마련하고, 이를 바탕으로 판소리계 소설의 인물의 형상화 측면에서 유 · 불사상과의 관련성을 분석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러한 유 · 불사상이 작품의 주제형성에 어떻게 기여하는지 종합해보고자 한다.BR인간을 바라보는 유학과 불교의 공통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인간의 본성을 긍정적으로 인식한다. 둘째, 악행의 원인은 인간의 생래적, 감각적 욕구로 인한 것이라고 본다. 셋째, 이는 노력을 통해 회복이 가능하다고 본다. 유학에서의 이상적 인간상은 군자이며, 불교에서의 이상적 인간상은 보살이다. 이들은 자신의 감각적인 부분을 잘 조절하고, 끊임없는 수양을 통해 이를 잘 제거해 나가는 존재이다. 이 과정을 통해 ‘보편적인 나’의 모습과 ‘개별적인 나’의 모습을 최대한 일치시키려 노력한다.BR 판소리계 소설에서 본성을 잘 보존하여 군자의 풍모를 보여주는 인물은 흥부, 춘향, 청이다. 반면 본성 회복에 실패한 인물은 변학도와 퇴별가에 등장하는 용왕, 별주부, 토끼이다. 상에 집착하지 않는 무아를 실현한 인물은 흥부와 심청이며 상에 집착하는 인물은 놀부와 변학도, 퇴별가에 등장하는 인물들이다. 바람직한 인물들은 군자와 보살의 조건에 일치하였으며 작품의 세세한 부분에서 그러한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내었다. 반면 그렇지 못한 인물들 역시 칠정에 치우쳐 본성을 회복하지 못하거나 상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여주어 바람직한 인물들을 부각시켜 줌으로써 작품의 주제형성에 기여하였다.BR 지금까지 판소리계 소설 개별 작품에 대한 유교적, 불교적 주제 도출 연구는 숱하게 있어왔지만, 유 · 불사상 간의 공통점에 입각하여 판소리계 소설 갈래 전체와 이의 관련성을 규명하려는 시도는 거의 있지 않았다. 판소리계 소설은 서민층이 창조하고 주도적으로 향유하였다는 인상이 강하여 기존의 유학과의 관련성은 이후 양반계층의 취향이 반영된 것이라 본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작품 속 인물들의 정치(精緻)한 작품 분석을 통해 양반층 뿐 아니라 서민층까지도 마음 속 깊숙이 유 · 불사상의 가치관을 긍정하며 이에 호응하고 있다는 사실을 도출할 수 있다. 본 연구는 우리 민족이 광범위하게 향유한 문화 자산인 판소리계 소설의 기저에 유 · 불사상이 광범위하게 자리했다는 점을 규명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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