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太倉州 劉家港은 원 이전까지 변두리 지역에 불과했지만 해운이 시작되고 해외무역도 활발해지면서 원말에 이르면 운송과 무역 방면의 중심지가 되었다. 또한 이 지역은 州治와 유학 교육기관까지 설립되어 행정과 교육 등 제반의 기능까지 갖추게 되었다. 유가항의 상인이나 해구들은 해운의 공적 관리자로 흡수되었으며 유력 船戶・漕戶들은 이러한 사업에 참여하여 동남지역의 정치・경제적의 주도층으로 등장했다. 이들은 치안과 지역민들에 대한 구휼, 혹은 교량의 건설을 주도하며 지역의 신망을 획득해가기도 했는데 이들을 해양상업세력이라고 규정하였다.BR 동남 연해지역은 원이 최대의 위기를 맞은 상황에서도 여전히 몽골의 지배하에 있었다. 게다가 이 지역의 해양 상업세력들의 기반은 원조와 깊은 관계를 형성하며 발전한 해운이었다. 따라서 이들 해양상업세력들은 지역방어에 참여하기도 하였고 장사성과 방국진에게 협력하면서 해운과 무역을 지속했다. 방국진 장사성이 지정 19년 해운을 재개했는데 이것은 이 지역의 여론이 방국진・장사성 정권에게 반영된 결과였다. 장사성 집단의 경우 해금을 실시하며 해양무역을 제한했지만 그 지역의 경제적 기반이 되었던 해운과 해양무역을 완전히 막지는 않았다. 원말 해양상업세력들은 방국진・장사성 세력을 지지하면서도 해상을 통해 몽골과 정치적 관계를 유지하고 대외 무역에도 적극 참여하며 동아시아 해상에서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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