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한국 근대 문학사에서 이광수가 중요한 위치에 놓인다는 점에서, 지금까지 불교와 이광수 문학의 관계에 대한 논의 역시 꾸준히 진행되어 왔다. 근대의 제 학문에 대한 이광수의 광범위한 지적 편력 내에서 불교의 위치를 가늠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작업이었다. 이에 식민지 후반기, 황도불교, 전근대 불교, 친일문학, 불교문학 등에 입각한 이광수 문학에 대한 환원주의적 시각이 강한 설득력을 얻어왔다.BR 하지만 식민지 후반기 이광수의 불교 사상이 이광수가 일제의 신체제 논리에 따르기 전에 형성되어 있었다는 점에서 이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 필요하다. 이러한 논의 선상에서 이 글은 ‘불교와 이광수’의 도구적 관계성, 즉 불교를 계몽적 기획에서 변질된 친일담론의 기반, 피식민지 작가의 방어기제 등으로 설명하는 것과 다른 방향에서 수행하였다. 이광수는 1920년대부터 불교를 소재로 삼은 문학을 창작하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식민지 현실 속의 한국 불교의 정신과 근대 문학의 이념이 혼합되어 있다. 이에 이 글에서는 세속화(profanation) 개념과 함께 ‘이광수의 불교’에 대해 연구하였다. 이를 통해 이광수 문학에 나타난 불교적 사유의 의미를 새롭게 구명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세 가지의 작업을 수행하였다. 첫째, 박한영의 근대적․세속적 불교 사상을 이광수가 수용한 불교의 방법으로 보고 『금강산유기』(1924)를 살펴보았다. 둘째, 불교와 세속화의 관계를 확장하여 「길놀이」(1939)와 「난제오」(1940)를 독해하였다. 셋째, 앞서의 작업들을 바탕으로 『원효대사』(1942) 속 원효의 파계의 의미와 그 사상적․윤리적 성격에 대해 고찰하였다. 이를 통해 이 글에서는 이광수가 수용한 불교가 작가에 의해 문학적․불교적 좌표공간에 어떻게 배치되는가를 확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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