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18~19세기에 동래 지역에서는 대략 20명 안팎의 화가들이 활동했던 것으로 조사된다. 卞璞(18세기 전반~18세기 후반), 卞持淳(19세기 전반 활동), 卞持漢(19세기 전반 활동), 金達晃(19세기 활동) 등 이름이 확인되는 화가는 8명에 이르며, 櫟園 등 字號만 알려진 화가도 10여 명에 달한다. 이런 측면에서 조선 후기에 동래는 하나의 지역 화단이 존재했던 곳으로 규정될 수 있다. 이러한 동래 지역 화단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인사는 변박이다. 변박은 조선 후기의 대표적 역관 집안인 밀양변씨의 일원이었다. 倭學 역관으로 巨富가 된 卞承業(1623~1709)이 그의 從曾祖였다. 영조연간에 도화서 화원으로 활약했던 卞相璧(1730~1775)과 그는 9촌간이었다. 이러한 사실은 변박이 지방화가임에도 불구하고 중앙 화단의 회화 경향에 밝았을 뿐 아니라 그가 대일수출용 그림을 본격적으로 제작할 수 있었던 이유를 간접적으로 설명해준다. 한편 卞琢(1742년경~1776 이후), 변지순, 변지한 등은 모두 변박의 집안사람들이었다.BR 동래 화가들은 중앙 역관은 물론 지역의 小通事로부터 題畵詩를 받는 방식 등으로 그들과 협업해 대일교역용 회화를 제작하였다. 그들의 회화 제작과 거래는 ‘중인 네트워크’를 통해 이루어졌으며, 이로 미루어 상당히 상업적인 성격을 띠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18세기 후반 이후 동래 화가들은 일본인을 수요층으로 상정해 산수화, 선종화, 영모화, 사군자화 등 다양한 장르의 회화를 본격적으로 제작하였다. ‘詩意’를 반영한 산수도나 남종화풍의 산수도는 물론 ‘尋梅’ 등 중앙 화단에서 인기가 있었던 화목의 그림들도 그렸다. 이때 그들은 『고씨화보』 등의 중국 화보를 참고하는 한편, 중앙에서 유행했던 다양한 회화 양식과 화풍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중앙 화단의 그림을 단순히 모방하거나 형식적 그림들을 생산한 화가들이란 동래 화가들에 대한 그간의 평가를 재고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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