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이 글은 재조선 일본인 작가 나카니시 이노스케의 『붉은 흙에 싹트는 것』(1922)에 나타난 식민지 조선의 감옥 재현 양상과 형식적 특성을 살피고, 한국의 ‘감옥소설’과 비교하는 것을 주요 목표로 한다. 나카니시는 한국의 카프 문학에 많은 영향을 미친 작가로, 그의 『붉은 흙에 싹트는 것』은 한국의 ‘감옥소설’보다 앞서 식민지 조선의 감옥을 구체적으로 재현한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감옥’은 일본인과 조선인이 조우하는 접촉지대로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BR 『붉은 흙에 싹트는 것』은 이분적 구성과 유사-전지적 시점의 독특한 형식을 취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중심인물인 조선인 김기호와 일본인 마키시마가 번갈아 등장하는 이분적 구성을 취하며, 이들의 의식을 두루 넘나드는 유사-전지적 서술자가 등장한다. 이러한 형식은 나카니시가 일본인 작가였기 때문에 활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식민지배를 받던 조선인 작가가 나카니시처럼 일본인과 조선인의 의식을 두루 넘나들며 모두를 포괄하는 유사-전지적 시점을 갖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두 이질적인 인물이 동일한 장(章)에 동시에 등장하는 순간, 즉 ‘감옥’에 두 인물이 연달아 수감하면서 발생한다. 이때부터 서술자는 마키시마에 밀착하여 감옥을 재현하기 시작하며, 조선인 김기호는 후경으로 밀려난다. 감옥 안에서 마키시마와 김기호가 접촉하여 서로를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감옥소설에서 일반적으로 유지되는 ‘단성주의’에 미세한 균열이 발생한다. 이러한 특징은 나카니시가 추구했던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국제주의적 연대를 향한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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