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19세기 말 20세기 초 한중일은 서세동점의 위기의식 하에 ‘인민은 있어도 국민은 없다’는 국가 부재의 현실을 타개해 나가고자 하였다. 그 위기 극복을 위해 비중 두어졌던 것이 서구 국가사상의 수용을 통한 신 국가건설이었다. 당시 다양한 서구 국가사상이 동북아 한중일에 소개되었지만 이 가운데서 가장 주목받았던 것은 블룬칠리의 국가사상이었다. 블룬칠리는 국가의 성립조건을 민족과 국민에 두었다. 국가의 기원은 단체를 이루는 인간의 천성에 있고, 동일한 종교와 언어 등이 이루는 공동정신에서 민족은 형성되며 민족이 정치적 단결을 이룰 때 국민이 된다. 따라서 한중일 모두는 신 국가건설을 모색함에서 민족과 국민을 주목했다. 가토 히로유키는 블룬칠리가 말한 ‘나치온(nation)’을 ‘民種’으로 번역했고, 량치차오는 ‘民族’으로, 나진/김상연은 ‘人民’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이 용어의 차이는 국가론을 접근하는 방식과 무관하지 않다. 가토 히로유키는 지배계급의 입장에서 民種과 국민의 관계를 규정하여 천황제 중심의 입헌국가로 지향해 나갔다면, 량치차오는 블룬칠리가 제시한 국가성립조건으로서 민족개념을 발전시켜 소민족주의와 대민족주의를 함께 주창하여 다민족의 혼합국가를 지향했다. 이는 한족(漢族)이 중심이 되는 대민족 국가를 이루어나가고자 함이었다. 한편 나진/김상연은 인민의 공동정신을 강조했고, 국민은 인민의 정치적 단결로 이루어지는 정치적 결합체라는 것에 주목하여 국민주권을 지향해 나갔다. 또한 만국 모두가 동귀일체가 되는 대동국가 건설을 이상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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