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1991년 무령왕릉 출토 목관에 대한 수종분석 결과, 일본산 금송이라는 결론이 도출되자 학계는 물론 일반 대중의 주목과 관심이 집중된 바 있다. 이후 고대 백제와 일본의 관계 속에서 금송의 원산지가 일본으로 사실화 되었다. 현재까지 관재 수종에 대한 이견을 제시할 수 있는 아무런 과학적 분석이 생성되지 않았기에 “樹種硏究”에 있어 기존 결과와 다른 의견을 개진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더욱이 일본이 金松의 유일한 서식지라는 학술적 판단이 여전히 유효하며 국내 식물학계 및 중국 학계에서도 그 결과와 해석을 수용하고 있다. 현재까지 고대 한국 및 중국에서의 금송 서식 가능성에 대한 새로운 타진이 전혀 이루어진 바가 없어 객관적인 학술적 근거를 활용하여 원산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여의치가 않다. 다만 공론화되지는 않았지만 중국 남조의 상장의례 및 봉부제도(사여제도)의 영향이 무령왕릉에 강하게 표출되면서, 관재의 증사도 함께 이루어졌을 개연성을 제기하는 분위기가 일부 감지되고 있다. 본문에서는 향후 금송 원산지에 대한 새로운 관련 연구가 생성되는 시점까지 비생산적인 논의를 피하기 위해 두 가지 측면에 대한 검토를 진행하려 한다. 첫째, 무령왕릉 출토 관재 분석의 경위를 정리하여 복기해 볼 필요가 있다. 둘째, 고대 중국의 수목식생, 관재수종 및 상장의례 중의 봉부관습 등에 대한 검토를 진행하여 적어도 현재까지는 관재의 유입처가 중국이 될 수 없음을 지적하고자 한다. 그리고, 금송이 백제 왕실 구성원의 장구로 사용된 시점과 사례를 통해 금송관재 사용의 제도화 성립도 살펴보기로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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