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본 연구는 일제시기 부산을 거점으로 기업 활동을 전개한 재조일본인기업가 이케다 스케타다(池田佐忠)가 일제 패망 후 모국으로 돌아가 재기를 위해 전개한 다양한 사업의 추진과정과 그 귀결을 분석하였다. 이케다는 일제 패전 직후 일본에서의 사업전개를 위해 신속하게 움직이고 있었고, 1952년 7월 심장병으로 갑자기 사망할 때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정력적인 기업 활동을 전개했다. 그 내용은 귀환 후 최초 사업인 염전사업부터, 주택건설사업, 멕시코 석유개발사업으로 이어졌다. 사업은 일제시기 부산에서의 기업 활동을 토대로 했고, 연장선상에 있었다. ‘사업보국’의 신념으로 무장하고, 끊임없는 관련 관청, 중앙 정부와의 접촉을 통해 지원과 특혜를 이끌어내려고 시도하는 사업방식 역시 변함이 없었다.BR 그러나 그의 재기를 위한 사업전개는 순조롭지 못했다. 일제시기 조선축항이 유야만에 투자한 기반을 토대로 시작한 제염사업의 경우 낮은 생산성과 戰後 혼란기의 기자재 공급지연 등으로 기대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울산건설이 소유한 거액의 국채를 토대로 시도한 주택건설사업 역시 폐쇄기관 동척의 지분을 출자로 전환시키는데 실패함으로써 좌절되었다. 이케다가 ‘석유보국’의 기치를 내걸고 ‘최후의 천직’으로 삼았던 멕시코 석유개발사업 역시 자금 조달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개발대상 석유광구가 소송에 휘말리는 등의 우여곡절과 이케다 자신의 사망으로 계획단계에서 좌절되었다.BR 이케다는 패전 후 일본에서 일제시기와 마찬가지로 변함없이 조국에 충성하고 헌신했지만, 그의 위상은 경계인이자 주변인의 위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특히 식민지 기업 활동의 유산인 울산건설을 토대로 추진한 주택건설사업에서 잘 보여주듯이, 미국에 의해 ‘민주 국가’로 탈바꿈하고 있던 戰後 일본에서 그는 ‘제국 일본의 유산’으로서 청산의 대상이었다. 결국 이케다의 재기를 위한 사업 활동의 전개과정과 그 귀결은 식민지 재조일본인의 국가에 대한 충성도에 상관없는 태생적인 경계인, 주변인 성격과 그 한계를 보다 두드러지게 보여주는 것이었다고 하겠다. 戰前과 전후, 그의 사업보국의 경영이념과 국가에 기댄 기업 활동방식에 변함이 없었듯이, 그 결과로써의 경계인, 주변인의 역사적 위상도 변함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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