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이 글은 중국풍 음악 열풍의 근원지라 할 수 있는 ‘대만’이라는 공간과 중국풍 음악 열풍의 출발점이 되는 ‘2000년대 초’라는 시간에 주목한다. 최종적으로는 주요 중국풍 음악에 대한 텍스트 분석을 통해 중국풍 음악 속 중국 재현 양상과 그 이면에 존재하는 정치적, 문화적 이데올로기를 찾는 데 목적이 있다.BR 중국풍 음악이란 2000년대 초 대만 가요계를 중심으로 창작된 서구의 팝 장르를 운용함과 동시에 중국 전통문화적 요소를 담고 있는 곡들을 지칭한다. 2000년대 초 대만 내부에서 탈중국화에 대한 반발로 형성된 ‘탈대만화’ 여론은 중국풍 음악이 만들어질 수 있는 밑거름으로 작용했고, 당시 몰락의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던 대만의 음악산업은 중국풍 음악의 현실적 창작 동기가 되었다. 음반 판매 저조로 위기에 직면한 대만 음악산업은 위기 타개를 위해 중국 시장으로의 진출을 모색하게 되었고, 중국인들의 감성을 자극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선택된 것이 바로 중국풍 음악이었다. 마침 이때 중국은 거대 음악 소비시장 부상했고, 이는 대만발 중국풍 음악이 시장에 안착할 수 있는 토대가 되었다.BR 『상하이1943』, 「무단장」등의 노래는 기억 속 장소로서의 중국을 묘사했다. 다수의 작품에서 중국 대중의 요구에 영합하기 위한 중국 흉내내기의 흔적을 볼 수 있었다. 내 구역 은 베이징 발음 따라하기, 경극, 원숭이 흉내내기 등으로 중국의 대중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었고, 신악단의 베이징의 하룻밤 등의 곡은 경극의 창법을 흉내내어 중국 대중들에게 어필하였다. 「용의후예」와 「개새영웅」에서는 민족주의를 소환하여 중국인과 전 세계에 퍼져 있는 화인 디아스포라로 하여금 민족 자긍심을 느끼게 하여 중화민족의 단결을 촉구했다. 「중국어」의 경우 양안 관계의 정치적 이슈로 떠오르기도 했다.BR 2016년 차이잉원(蔡英文)이 다시금 정권을 탈환한 이래, 대만에서는 다시 한번 탈중국화 정책을 강력하게 전개하여 양안 관계는 현재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2000년대 초에 대만을 시작으로 중화권을 강타한 중국풍 음악은 정치적으로 양안의 상황이 불안정 함에도 불구하고, 최근까지도 각종 미디어에서 소환되어 전체 중화권 대중문화계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양안 관계가 어떠하다는 것은 정치적인 것으로만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정치적 관계의 긴장에도 불구하고 비정치적인 문화 영역에서는 꾸준히 교류가 있음을 우리는 중화권에서의 중국풍 음악 열풍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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