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거란은 원시 씨족사회 때부터 줄곧 유목 생활을 했다. 그러나 이런 생산방식은 자급자족하는 경제를 만들 수 없으므로 유목민이나 다른 경제체제가 다른 정주사회와 인접해 있지 않으면 그들만으로 살아남을 수 없다. 결국 거란은 생존 수단으로 농업경제를 추진하거나 외부 사회로부터 필요한 물품을 공급받을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거란은 유목 외에 약탈과 교역, 농경 등 다양한 경제수단을 모색해야 했다. 그러나 약탈과 거래는 일시적이고 인접국과의 역학관계에 따라 가변성이 있어 물질적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다. 이런 유목경제의 구조적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사회 내에서 지속적으로 물자를 획득할 수 있는 매커니즘을 만들어야 한다. 거란은 부족연맹 시절부터 농경에 관심을 기울였지만 자연환경은 물론 유목민 정서에 맞지 않아 농업 생산성이 떨어지고 최소한의 생계 수단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경제적 후진성을 군사적 우위로 전환하고 이 새로운 형태를 정복하며 안정적인 착취를 추구했다. 그들은 정복과 이주민 정책을 통해 피정복 주민들을 강제로 이주시켰다. 거란지구에는 농경민이 농업생산에 종사하고 있으며, 장성 이남의 경작지까지 자신들의 영토를 지키고 있다. 그 결과, 다양한 종족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남북지역에 따라 생산방식과 생활풍속, 인종을 달리하는 ‘인속이치’의 정책을 채택하였다. 거란은 이런 배경에서 반농반목 경제체제를 갖추기 시작했고, 결국 이원적 경제구조인 목농연합 체제를 실현했다. 중원문명에 동화되지 않고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며 유목과 농경의 적극적인 공존을 추구한다. 그래서 농경은 거란의 보조적 생산수단으로서 일정한 지역에서만 제한하였다. 그 결과 그들의 고유한 정서와 관습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농업경제를 구축할 수 있었다. 이는 이민족에 의한 중국 지배의 새로운 생산양식을 마련한 역사상 탁월한 선례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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